경남대 이성윤 석사학위논문
옥 전 시장 일제강점기 활동
'사회운동' 성격 띠었음 밝혀

해방 후 옛 마산시 초대 시장을 지낸 남전(襤田) 옥기환(1875~1953)의 행보를 조명한 논문이 나와 눈길을 끈다.

옥 전 시장은 사업가이자 사회활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학술 연구 결과물이 나온 것은 이번 이 처음이다.

논문은 경남대학교 대학원 인문학과 역사학전공 이성윤(지도교수 윤상현) 씨가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일제강점기 남전 옥기환의 사회운동>이다.

이 씨는 연구에서 옥 전 시장 생애의 여러 면모를 밝히고, 그의 과오로 알려진 친일 행위가 사회운동의 하나였음을 논증했다.

옥기환 전 시장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마산의 경제·교육에 많은 발자취를 새겼다. 특히 1907년 국내 최초의 노동야학인 마산노동야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맡는 등 교육 분야에 관심이 컸다.

마산고·마산용마고·성호초교의 설립에 기여했고, 현재 창신중·고교와 창신대의 모태가 된 창신학교 출범에도 관여했다. 1919년 마산 최초의 조선인 주식회사인 원동무역을 세우는 등 지역 경제에도 흔적이 적지 않다.

옛 마산시 초대 시장을 지낸 남전 옥기환(첫 줄 왼쪽 다섯째). /경남도민일보 DB
옛 마산시 초대 시장을 지낸 남전 옥기환(첫 줄 왼쪽 다섯째). /경남도민일보 DB

지역 부호로서, 일제가 메이지 일왕을 숭배하고자 메이지 신궁(明治神宮)을 짓던 때 봉찬회에 이름을 올리고 성금을 내 친일의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5개월여간 미 군정기 초대 마산부윤(마산시장)을 지냈다. 

논문은 유교적 교육을 받은 전통적 유력가가 근대 민족자본가로 변모하는 예로서 옥 전 시장에 주목했다. 특히 옥 전 시장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운동의 진행을 살피고, '식민지적 공공성'의 증명을 시도했다.

식민지적 공공성은 피식민지 사람들의 '부역' 행위 중에는 협력과 저항을 오가는 '회색 지대'가 존재하며, 식민 모국에 협력함으로써 피식민지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논문은 옥 전 시장이 일제 치하의 지방의회라 할 수 있는 마산부 부협의 의원으로 활동한 일을 이 사례로 논증하고 있다.

그 근거로 옥 전 시장이 부협의회에서 1926년 도립고등보통학교 기성회에 참여하면서 정원의 절반을 조선인 학생에게 보장하는 등 지역민 교육 이권을 수호한 사례와, 지역민의 목소리가 모이고 표현되도록 '마산공회당' 설립을 추진한 일 등 다수를 제시했다.

논문은 이외 여러 논증을 통해, 옥 전 시장의 활동이 '사회운동'의 성격을 띰을 밝혀냈다.

평소 경남 지역사를 연구하며, 2018년 저서 <도시의 얼굴들>에서 옥기환 전 시장을 다루기도 한 허정도 경상남도 총괄건축가는 이 논문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허 건축가는 "옥기환 전 시장을 진지하게 다룬 연구가 이제야 나온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받는 듯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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