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당시 어부였던 고 김경영 씨 조사 결정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한 고 김경영 씨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이 이뤄진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에 대한 조사개시를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김경영 씨가 3.15의거 당시 김주열 시신을 인양해 1960년 4월 11일 시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단순 시신 인양자에서 공로자로 재평가해야 한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김경영 씨 딸의 인터뷰 기사와 사료 등을 검토한 결과 3.15의거 참여 사실을 규명하는 조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마산 앞바다를 생계 터전으로 살아가던 평범한 어부였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쯤 당시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주열 시신을 인양했다.

그가 자신의 나룻배에서 직접 끌어올린 김주열의 전신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사진을 찍어 내보내자 국민은 분노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에 신물이 나 있던 민심을 분노로 들끓게 하여 4월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김주열 시신 인양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지만, 김경영 씨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2003년 본보가 김경영 씨의 둘째 딸 김금희(당시 53세) 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김 씨는 그해 여름 태풍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배를 잃고, 거의 매일 술로 지내다 이듬해 5월 9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인양한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충격 탓인지 김경영 씨의 부인과 아들도 각각 세상을 떠났다.

당시 김금희 씨는 "해마다 3.15가 되면 김주열을 떠올리지만 우리 가족들의 아픔도 한 번쯤 생각해주면 좋겠다. 김주열 영정 앞에서 통곡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금희 씨도 이 인터뷰 이후 기념사업회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진실화해위 김근이솜 조사관은 "진상규명 대상자가 돌아가셨고 유족도 찾지 못해 조사에 어려움을 예상하지만, 행정기관 등의 협조를 구해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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