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 창원읍성 원경.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이 동네가 조선시대 지역 행정기구가 있던 곳이라고?’

창원시 의창구는 겉보기엔 여느 곳과 다름없는 살림집과 빌라, 상가들이 늘어선 일반 도심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동네의 과거가 간단치 않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창원 도호부의 치소 외곽을 옹위하던 성이 있었다. 바로 창원읍성이다.

1477년 펴낸 <성종실록>(成宗實錄) 10월 29일 6번째 기사에는 창원읍성이 시축한 지 1년 만(1476년 축성 시작→1477년 완공)에 지었다고 나와 있다. 성곽 규모는 높이 약 3.84m, 둘레 약 0.6㎞~1.49㎞. 관련 문헌 기록은 병조판서 이극배(李克培)가 창원과 울산에 읍성을 쌓을 것을 건의하자, 성종이 이를 받아들여 그해에 읍성 축성이 시작됐다는 사실도 전한다.

창원읍성 동문지. 빌라 앞에 성벽 돌들이 흩어져있다. /최석환 기자
창원읍성 동문지 성벽 돌들이 빌라 옆에 늘어서 있다. /최석환 기자

이런 내용이 일러주듯 기존 창원읍성 터에는 옛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행정기관 정취와 성곽 본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화 과정에서 유적이 대부분 파괴됐기 때문이다. 성문이나 본상의 외관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성벽 상태도 온전하지 않다. 거대한 성벽 돌들은 곳곳에 널브러져 방치되고 있다. 창원읍성 동문지(북동 일대)에서는 빌라 두 채가 성곽을 관통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창원시는 2005년 첫 발굴조사에 이어 열세 차례에 걸쳐 시굴·발굴한 후 동문지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땅 매입 보상조차 마치지 못했다. 시는 기존 2023년에서 2027년으로 사업 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창원읍성 남문지(중동 일대)도 훼손이 심각하다. 원형에 가까운 옹성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허물고 주택을 지었다. 민가 외벽을 성벽 돌로 둘러 집을 건축하거나, 성벽 돌 위로 실외기를 올려 받침대처럼 쓰기도 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유지에 있는 유산이라 시는 복원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빌라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성벽 돌들. /최석환 기자
주택 외벽을 두르고 있는 창원읍성 남문지 성벽 돌들. /최석환 기자
창원읍성 남문지 성벽 돌들이 주택 외벽을 두르고 있다. 돌 위에는 실외기가 올려져 있다. /최석환 기자

창원읍성 동쪽 백옥산 정상에 있는 검산성(망호등 산성)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검산성은 해발 184m에 있는데 관리는커녕 파괴·훼손된 모습이 역력하다. 삼국시대에 창원으로 들어오는 길목과 창원 시가지, 북쪽 북면에서 창원으로 넘어오는 고개가 한눈에 조망되는 자리지만, 성 내부 건물지 위에는 창원시가 만들어놓은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성벽 돌은 등산객들이 만들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돌탑과 민간인 무덤 기단 층으로 쓰이고 있다. 무너져내린 돌들은 곳곳에 방치돼있으며, 둘레 600∼700m 성벽은 붕괴가 심해 정확한 축조양상을 파악하기 힘든 수준이다. 시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성곽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워놨다. 나무도 심어 보존 활동을 벌였다.

창원 검산성(망호등 산성) 성벽 돌들이 모여 돌탑이 됐다. /최석환 기자
창원 검산성(망호등 산성) 성벽 돌이 무덤 기단으로 쓰이고 있다. /최석환 기자

방치 중인 유적은 두 성곽 말고도 많다. 창원지역 성곽 다수가 아무런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훼손과 파괴, 방치가 반복되는 동안 창원 성곽을 주제로 조사가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연구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

홍승현 창원대박물관장은 최근 창원지역 성곽을 조사한 내용을 기록한 책 <창원의 성곽Ⅰ>(창원대박물관 지음)에서 “창원지역에는 우리나라 성곽 유적의 백화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사시대 환호, 산성, 읍성, 왜성, 봉수, 요망대, 진 등 다종다양한 유적이 조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남에서 가장 많은 성곽 유적이 (창원에) 분포하고 있다”며 “하지만, 창원지역 성곽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미진하다”고 짚었다. 그러면 “일부 유적은 지금도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창원의 주요 성곽유적 분포도.
1. 검산성(망호등 산성) 2. 무점리 성지 3. 염산성(구룡산성) 4. 화천리 성지 5. 외동 성산산성 6. 진례산성 7. 마산 이산성지 8. 신감리 대산산성 9. 용담리 포덕산성 10. 대현관문성지 11. 사동리 성지 12. 인곡리 인곡성지 13. 임곡리 토성 14. 현동 당마산성 15. 내포성지 16. 구산성지 17. 완포현 고산성 18. 자마산성 19. 제덕토성 20. 창원읍성 21. 합포성지 22. 진해현성지 23. 회원현성지 24. 웅천읍성 25. 산호동 용마성지(마산왜성) 26. 명동왜성 27. 안골왜성 28. 웅천왜성(남산왜성) 29. 창원 자마왜성 /창원대박물관

창원에는 청동기시대 환호유적인 창원 남산유적을 포함해, 삼국시대 창원 성산산성, 창원 진해 구산성, 고려∼조선시대 합포성지, 웅천읍성, 임진왜란 시기 왜군의 주도로 축성된 안골왜성, 웅천왜성 등도 확인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창원지역에는 삼국시대~조선시대 산성·읍성과 왜성까지 29개소가 확인된다. 진·봉수·요망까지 합하면 47개소가 분포하고 있다.

창원의 성곽 유적 중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전체 47개소 가운데 9개소에 불과하다. 이런 까닭에 비지정 성곽 유적 중 지정·관리가 필요한 중요 유적을 추려 문화유산 확대 지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창원시는 보존·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많은 유적이 훼손되고 있지만, 유적이 사유지에 분포하는 사례가 많아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김치숙 시 문화유산육성과 팀장)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주민들에게 유적이 훼손되지 않게 잘 관리해달라고 안내하거나, 그 밖에 유적에서 건설행위가 있을 때 조사기관을 참관하게 하거나, 층수 제한을 걸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리 사유지라 하더라도 시의 의지가 강했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일도 많았을 터다. 그간의 시 행보를 돌이켜보면 어쩐지 이런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국내 역사는 물론 창원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가 성곽인 만큼 철저한 보존관리 계획이 필요한 때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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