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건강하려면 목욕탕에 가야" 인식
동네 사람 모여 이야기 나누는 사랑방 역할 톡톡
2006년 1036개 정점 찍은 후 현재 821곳 영업

코로나19 벗어나나 했더니 공공요금 직격탄
목욕탕 오래된 굴뚝은 안전 문제 등 골칫거리

한때 도시화·산업화를 거쳐 빠르게 늘어난 경남 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줄어들다 코로나19 확산과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악재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자체가 목욕탕 노후 굴뚝 철거비를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본인 부담금 걱정에 엄두도 못 내는 곳이 대부분이다. 

경남 도내 목욕탕은 2006년 1036개로 정점을 찍은 후 점점 줄어 현재 821곳이 영업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목욕탕 모습. /김연수 기자
경남 도내 목욕탕은 2006년 1036개로 정점을 찍은 후 점점 줄어 현재 821곳이 영업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목욕탕 모습. /김연수 기자

◇사라지는 목욕탕 =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 중 '전국 목욕장업 신고·폐업 허가' 자료를 살펴보면, 2022년 12월 기준 경남 도내 목욕탕은 총 821곳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12월(879곳)보다 58개 줄어든 수치다. 이 3년 동안 새로 허가받은 목욕탕은 29곳, 폐업 신고한 목욕탕은 91곳이다. 새로 연 곳은 복지회관·호텔·스포츠시설에 부속된 형태가 많은데, 문을 닫은 곳은 대부분 '○○탕'이라는 이름의 동네 목욕탕이었다. 운동·수영 등 복합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곳부터 사라지는 것이다. 

남아 있는 목욕탕들도 수입 감소에 겨우 버티는 실정이다. 통계청 연간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욕탕업 및 기타 신체관리 서비스' 업종 매출은 2020년 41.9%, 2021년 다시 33.1% 감소했다. 

창원시 마산지역에서만 1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앵화탕(1914년 설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6년 이곳을 인수한 조연자(69) 씨는 "코로나도 그렇지만, 이전부터 손님 자체가 많이 줄어 지금은 초기의 50% 정도"라며 "동네 어르신들은 나이를 드시는데, 새로 찾는 손님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노후 대책 삼아 뛰어든 일인데 이렇게 고생할 줄 몰랐다"라며 "친구들이 월급도 받지 않고 도와주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합 금지 등으로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목욕탕이 이제 가스·전기·수도요금 인상에 신음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목욕탕 굴뚝들. /김구연 기자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합 금지 등으로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목욕탕이 이제 가스·전기·수도요금 인상에 신음하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목욕탕 굴뚝들. /김구연 기자

◇경남 목욕탕 흥망성쇠 = 고 유장근 경남대 교수가 저서 <마산의 근대사회>에 정리한 자료를 보면, 지금의 '목욕탕' 형태가 등장한 시기는 대한제국 이후부터다. 목욕탕은 식민지에 이식한 근대 위생시설의 하나였고, 일본인들의 사업 수단이었다. 한편으로는 피식민지민의 비위생성을 강조하는 통치 수단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전반기만 해도 매주·매달 목욕탕에 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때문에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겨울이면 이가 득실거렸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도시화·산업화가 본격화하고 시민 소득이 증가하자 사회적으로 위생에 관심이 커졌다. 이 시기 동마산(양덕동·봉암동 일대)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서자 근처에 목욕탕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마산역 근처에는 장이 서는 날에 맞춰 목욕하러 오는 시골 사람도 많았다. 

목욕탕업은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고속 성장했다. 세태를 반영하듯, 1995년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는 매회 브라운관에 목욕탕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경남 목욕탕은 1970년 49곳, 1980년 154곳, 1990년 445곳, 2000년 902곳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백상권 한국목욕업 경남지회장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목욕탕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매주 손님이 몰리던 때"라며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도내 목욕탕 수가 1036곳까지 늘어난 2006년을 기점으로 문 닫는 곳이 더 많아졌다. 주거문화가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고 샤워 문화가 대중화한 것이다. 가정마다 욕실을 갖춘 영향이 컸다. 숙박이 가능한 찜질방이나 사우나 시설을 갖춘 중대형 목욕탕이 늘어나자 경쟁도 치열해졌다. 지금은 목욕탕·찜질방·사우나 할 것 없이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목욕탕 굴뚝'은 과거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남 도내 지자체들은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로 철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목욕탕 굴뚝 모습. /김연수 기자
'목욕탕 굴뚝'은 과거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남 도내 지자체들은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로 철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목욕탕 굴뚝 모습. /김연수 기자

◇굴뚝 철거 지원 시작됐지만 = 경남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곳곳에 솟은 '둥근 목욕탕 굴뚝'을 보고 낯설어한다. 경남·부산지역 외 다른 지역은 굴뚝을 빨간 벽돌로 지어 올린 곳이 많고, 높이도 낮아서다. 정부가 제한한 굴뚝 높이는 20m지만 경남·부산 지역은 그보다 높은 곳이 많다. 유 교수는 바람이 강한 해안지대의 특성, 산업 집적에 따른 매연 문제 등이 굴뚝 높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풀이했다.

한때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던 굴뚝이지만,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1990년대 후반 가스보일러 도입으로 기능을 상실했지만, 철거 비용이 만만찮아 그대로 방치된 상황이다. 2021년에는 마산 한 목욕탕 낡은 굴뚝에서 파편이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결국 창원시가 전국 최초로 노후 굴뚝 철거비 예산 지원(50% 이내, 최대 1500만 원)에 나섰다. 시는 지난해 노후 굴뚝 2곳을 철거하고 올해 19곳과 철거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창원에 남은 노후 굴뚝은 159곳으로, 철거가 위급한 굴뚝은 9곳이다. 거제시 역시 지난해 1곳을 철거했다. 경남도 역시 도내 굴뚝 445곳을 점검한 뒤, 자진 철거·정비하는 소유자에게 예산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 사업 평가 후 해당 시군에 특별조정교부금을 내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부담 비용 50%도 목욕업 쇠퇴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업주들에게는 큰돈이다. 백 지회장은 "현재 공공요금 인상에 수익이 안 나는 상황에서, 1500만 원이 없어 철거를 포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진주 쪽 업주들은 전액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마산 앵화탕 조연자 씨는 "100년 역사를 간직한 이 같은 목욕탕은 문화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방향도 지자체가 고민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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