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망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단독 판사 원칙임에도 합의부에
법원조직법상 규정 지키지 않아

한국제강 선고 직전 공판 연기
마산지원, 재정합의결정 추진

삼강에스앤씨 지정 기일 없어
통영지원, 단독 판사로 재배당

"중대 사안에 재판부 허술"
민주노총 경남본부 비판

법원이 노동자가 사망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을 잘못 배당하면서 재판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진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은 법관 1인 '단독 판사'가 맡는 것이 원칙인데, 일부 사건은 3인 이상 법관이 합의해 재판 내용을 결정하는 '합의부'에 배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사건 재배당 또는 합의부 배당을 위한 '재정합의' 등 절차를 밟고 재판이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법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애초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심리가 복잡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깊은 분석 없이 법원조직법 규정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잘못된 사건 배당으로, 선고를 앞뒀던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이 미뤄졌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합의부'인 형사1부(재판장 김영욱 부장판사, 사해정·홍진국 판사)가 3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과 그 대표 2명의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2일 자 <한겨레> 보도를 계기로 이 사건이 합의부로 잘못 배당됐음을 인지했고, 재판부는 변론을 다시 이어가면서 오는 3월 24일로 공판 날짜를 잡았다.

함안에 있는 철강제조업체인 한국제강은 지난해 3월 설비 보수를 하는 60대 하도급업체 노동자가 떨어진 크레인 방열판에 깔려 숨져 같은 해 11월 기소됐다. 한국제강 대표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하도급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그해 12월 공판 한 차례를 끝으로 변론을 종결했고, 검사가 대표와 법인에게 각각 징역 2년과 벌금 1억 5000만 원 등 구형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앞으로 재판부는 사건 내용이 복잡하거나 사안이 중대하면 당사자 동의를 거쳐 사건을 합의부로 옮기는 '재정합의결정'을 받을 계획이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개정된 '법원조직법'을 보면 '1년 이상 징역' 등을 받는 사건은 지방법원과 지원의 합의부가 심판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외하는 8가지 사건 목록이 있고, 노동자 1명 이상이 사망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이 포함돼 있다.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돼 있다.

역시 노동자가 사망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2건은 재판부를 바꾸거나 공판 날짜를 변경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삼강에스앤씨 하도급 노동자 추락 사망 사건을 애초 형사1부(이은빈 부장판사 등 법관 3인)에 맡겼으나 2일 형사1단독(김창용 판사)으로 다시 배당했다. 이 사건은 공판 등 지정된 일정이 없었다.

고성에 있는 선박수리업체인 삼강에스앤씨는 지난해 2월 선박 안전난간 보수공사 중 50대 하도급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숨져 경영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 6명과 함께 같은 해 11월 기소됐다. 삼강에스앤씨 대표 또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하도급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3단독(양석용 부장판사)은 함안군 수도시설 공사 중 하도급 노동자 끼임 사망 사건과 관련해 2일 오후 첫 공판을 열 예정이었으나 날짜를 변경하기로 했다.

지난해 5월 함안 칠원읍 수도시설 개선사업 현장에서 몸체를 움직이던 굴착기 뒷면과 담장 사이에 60대 하도급업체 용접 노동자가 끼여 숨져 만덕건설과 하도급업체, 경영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 4명이 함께 같은 해 12월 기소됐다. 만덕건설 대표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창원지법은 법적 절차에 따라 재배당(통영지원), 재정합의결정(마산지원) 등으로 공판을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그만큼 재판부의 사건 검토 시간이 길어지고 2월 중 법원 인사도 앞두고 있어 전체 재판 과정의 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를 재판부 실수로 치부하고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재판 과정의 검증 시스템을 다시 확인해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사법부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 이토록 허술하게 임하고 있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동욱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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