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주요 원인 꼽히는 의료산업
기후재난 대처 위한 제도 개선 동참을

해를 주지 않는 의료라니? 의료는 사람 살리는 일 아닌가? 사람을 살리는 의료행위 속에 기후위기 요인들이 있다면 어떤가, 이런 요인들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탄소배출에서 의료산업의 비중은 5위라 한다. 탄소배출의 주된 원인은 일회용품과 포장지·의료폐기물·운송 등이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에서부터 기후-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단체가 있다. '해를 주지 않는 보건의료(Health Care Without Harm·HCWH)'라는 이름의 이 국제단체는 2021년 10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총회(COP26) 기간 중 보건의료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협정을 제안, 50여 개국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이 단체는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 권고안과 영국 국영의료시스템(NHS)의 탄소저감 정책들을 비교 분석해 보건의료 부문에서 탄소감축 7가지 로드맵을 제안했다.

의료보건연구단체 '건강과 대안'에서 나온 논문을 참조해 한국에 적응해 보면 다음과 같다.

쓸모없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해야 한다. 병원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경쟁하듯 값비싼 기계를 더 많이 수입해 밤새 돌린다. 지역거점 병원들은 지역사회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에너지 분산과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병원 건물을 지을 때도 탄소배출 제로, 자연채광, 환기를 설계하고 병상을 과도하게 늘려 밀집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대형 주차장과 장례식장도 탄소배출을 늘린다. 15분 친환경 도시처럼 병원 이용을 위한 장거리 이동을 줄이고 병원 내 차량은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또한 건강하고 신선한 지역 먹거리를 이용해야 한다. 이동을 늘리는 글로벌 먹거리, 기업형 가공육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줄이고 명확한 효과가 입증된 약품을 처방하는 '녹색 처방전(green prescription)'을 실천해야 하며, 의료폐기물 관리를 개선하는 순환경제의료를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건강보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적자에 기반한 왜곡된 건강보험 시스템은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의료인은 감염병 등 기후위기로 초래되는 질병을 치료하면서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 생물학적 의학지식을 넘어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적응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마을단위의 '로컬택트(Local+Contact)'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상화한 재난에 민첩하게 대처하려면 지역 내 위기에 대한 일상적 조기 경보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촘촘한 지역사회 기반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위에서야 실제로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는 2021년 특별보고서에서 기후변화를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지역 공공의료는 필수이며 지역 활성화를 위한 중심기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13.2개로 OECD 평균의 세 배이지만 공공의료 병상 수는 1000명당 1.2개에 불과하다. 공공의료와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할 재난의 시대에 현 정부는 오히려 공공의료와 지방을 죽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방 공공병원 건립계획들이 백지화되고 있다. 생태위기의 시대이다. 무조건 서울의 빅5 병원에 달려가기보다 지역 공공병원과 동네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삶, 소박한 죽음, 녹색 죽음에 대한 사유가 이제 필요하다.

/박기헌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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