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이해 당사자들 '상생 협약'
노동자 인권보호·고용안정 다짐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긍정 평가
강제력·실효성 부족하단 지적도

행정 '갑질' 사실조사 전문성 확보
입주민 모범사례 축적 등 과제로

아파트 내 노동자 인권 보호와 고용 안정을 위해 2019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곳곳에서 '상생 협약'이 잇따랐다. 지자체, 입주자대표회의, 관리노동자, 관리업체, 용역업체, 지원기관 등이 함께 의지를 모아 공표하는 것이다.

거제시도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71개 단지가 참여해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상생 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5월 제정된 '경상남도 공동주택 관리노동자(관리사무소장·관리직원·경비원·미화원 등) 인권증진 및 고용안정에 관한 조례'에 따라 도지사도 상생 협약을 권장할 수 있다. 상생 협약 확산은 아파트 내 갑질을 예방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역시 강제력이 없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파트 내 '갑질' 조사를 하려면 행정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과 제도를 갖춰야겠지만, 입주민들이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거제시가 지난해 12월 말 아파트 내 '갑질' 근절과 관리노동자 고용 안정을 위해 입주자 대표, 관리노동자 등과 함께 '2022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상생 협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거제시
거제시가 지난해 12월 말 아파트 내 '갑질' 근절과 관리노동자 고용 안정을 위해 입주자 대표, 관리노동자 등과 함께 '2022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 상생 협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거제시

◇효력·전문성 확보 관건 = 길진영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남도회 사무국장도 공동주택관리법이 현장에 안착하지 못한 점을 짚었다. 길 국장은 "관리사무소장은 부당한 지시나 업무 간섭을 거부하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사실 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는 조항이 2021년 8월에 생겼음에도, 현장에 적용이 안 되고 있다"며 "시군에는 의뢰를 받을 창구가 마련되지 않은 데다 전문적으로 조사할 위원회 등 기구를 갖춘 곳도 거의 없다. 조사를 의뢰한 관리사무소장 임기를 보장할 장치도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또 길 국장은 "과도한 민원 속에서 일하다 보면 누락이 생길 수 있다. 단순한 실수조차 입주민이 행정기관에 민원을 넣으면 당하는 쪽은 관리사무소뿐"이라며 "민원이 누적돼 폭언이나 폭행 등 형사 사건이 되는 문제가 반복되는데, 행정력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데 한계가 있어 현장은 갑갑해한다. 법이 실효적 조치를 담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광주지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 빛고을경비원연합회는 2020년 5월 '공동주택 관리 노동자 인권 보호와 행복한 아파트 만들기' 협약을 맺었다. 지난 3년간 70개 단지가 동참했는데, 광주 전체 1100여 단지와 비교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광주시는 협약을 맺고 6개월이 지난 아파트 가운데 고용 유지, 업무·휴식 공간 개선 등을 점검해 우수 아파트를 뽑아 포상하면서 노동환경 개선 물품도 지원했다.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는 지난해 10월 동별 대표자와 입주민을 대상으로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리더 교육'을 마련해 공동주택 관리 운영의 개선 방향과 민주적 입주자대표회의 모범 사례 등을 공유했다. 상생 협약의 후속사업도 검토 중이다.

전은영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 공동주택지원부장은 "상생 협약이 캠페인에 가까워 가시적 효과는 없었지만, 지자체가 포상할 때 협약을 맺은 아파트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서서히 변화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 조성은 관리노동자들에게도 든든한 측면일 것"이라며 "올해는 강제성이 없는 상생 협약 사업을 접고, 그동안 협약을 맺은 아파트를 대상으로 현장에서 인권 침해를 예방하려면 어떤 사업을 이어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범 사례 축적하자 = 경남도 조례에 따라 도지사는 협약 등 이행 실적이 우수한 공동주택에 '공동체 생활 활성화 사업' 우선 지원 등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행정이 아파트 '갑질' 사건에 개입하거나 제재하기 어렵다면, 긍정적 사례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경남도 조례를 대표로 발의했던 송오성 전 도의원은 "조례 역시 민간에 강행 규정이 될 수 없어 주택관리조직 지원센터가 모니터링으로 좋은 사례를 발굴해 권장하고, 여기에 경남도도 의지를 보여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면 시군으로도 인식이 확산할 것"이라며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입주민들이 실행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현우 양산신도시청어람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는 "결국 내부에서 갑질 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경비·미화 노동자와 간담회를 열어 모니터링하고, 관리업체, 관리사무소, 경비업체, 미화업체 등도 상시로 면담해 복장과 안전용품 지급 등 여러 사안을 살피고 있다"며 "아파트 내 종사자를 대하는 태도, 노동 조건 등을 두고 입주민 간에 공감대를 형성해 처우 개선 등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법이 강제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 사이 노동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동욱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