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월현들 찾은 멸종위기 철새
볍씨 뿌려 넉넉한 겨울 나게끔
농민들 들녘 '놀이터'로 제공
"꾸준히 찾도록 행정도 관심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월현들이 나락 금빛으로 여물었다. 1월이라 가을걷이는 분명히 아닐 텐데, 영하의 들녘에 무슨 일일까.

28일 오후 너른 월현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곡면 죽전리 호미교에 차 여러 대가 섰다. 모두 11명, 볍씨를 뿌리려고 나선 발걸음이 분주했다.

의령군친환경농업협회, 환경을 생각하는 신반시민, 창녕환경운동연합, 낙동강경남네트워크 연대는 이날 월현들에 볍씨를 뿌렸다.

올겨울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 떼가 월현들을 찾았다.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월현들에서 농민과 시민이 재두루미 먹이로 쓰일 볍씨를 뿌리고 있다. /최환석 기자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월현들에서 농민과 시민이 재두루미 먹이로 쓰일 볍씨를 뿌리고 있다. /최환석 기자

가끔 11월 전후나 2월 전후로 잠깐 보였다 사라지던 재두루미였는데 올해는 겨울을 나려고 아예 내려앉았다.

재두루미 떼는 호미교에서 직선거리로 500m가량 떨어진 남강 모래톱에 자리를 잡았고, 먹이는 월현들에서 구했다.

올해 월현들과 남강 일대에서 겨울을 나는 재두루미는 많게는 70여 마리. 남강 일대에서 큰 규모로 겨울을 나는 재두루미 떼 모습은 생소한 광경 이전에 아예 처음이다.

더욱 혹독해진 겨울 추위를 피해, 낙곡을 찾기 어려워진 강원 철원평야와 이미 가득 찬 창원 주남저수지를 벗어나 흩어진 까닭으로 전문가는 풀이했다.

의령군친환경농업협회, 환경을 생각하는 신반시민, 창녕환경운동연합, 낙동강경남네트워크는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월현들에 재두루미 먹이로 쓰일 볍씨를 뿌렸다. 이날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최환석 기자
의령군친환경농업협회, 환경을 생각하는 신반시민, 창녕환경운동연합, 낙동강경남네트워크는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월현들에 재두루미 먹이로 쓰일 볍씨를 뿌렸다. 이날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최환석 기자

원래 남하해서 머물던 일본 가고시마현 북서부 이즈미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위협도 만만찮았을 터.

까닭이야 무엇이든 농민 처지에서는 그저 들녘을 침범한 불청객일 텐데, 월현들 농민은 달랐다. 들녘처럼 너른 품을 재두루미에게 고스란히 내어줬다.

지난해 12월 박목(65) 의령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자기 논에 내려앉은 재두루미를 처음 봤다.

무슨 새인가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전원배 우포생태학습원 사무국장 덕에 '귀한 손님' 정체를 알고는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박 회장은 이날도 부지런히 자기 논과 주변 논에 재두루미 먹으라고 골고루 금빛 볍씨를 뿌렸다. 그는 벌써 다음 겨울을 기대했다.

재두루미 떼가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과 함안군 법수면 사이를 흐르는 남강 모래톱에서 쉬고 있다. /최환석 기자
재두루미 떼가 28일 오후 의령군 정곡면과 함안군 법수면 사이를 흐르는 남강 모래톱에서 쉬고 있다. /최환석 기자

"귀한 손님이 다음에도 월현들을 찾으려면 먼저, 논갈이를 하지 않아야지. 의령군이 나서서 논 주인과 협상, 3만㎡가량은 보존하면 좋겠습니다."

월현들과 남강 일대에서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일은 여러모로 득이라고, 전원배 사무국장도 박 회장처럼 행정과 교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재두루미 월동지 분산 경향이 계속 이어진다면 지자체에서 관리 체계만 잘 세워도 재두루미가 월현들에서 꾸준히 겨울을 나리라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역 볼거리 자원으로 활용 가능성도 있는 만큼, 재두루미 먹이터 조성을 고민한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볍씨를 뿌리려고 모인 지역민과 활동가는 재두루미에게 들녘을 내어준 농민과 꾸준히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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