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을비포성지·상족암군립공원
바다와 함께하는 문화·자연유산
사천 8경 중 하나인 코끼리바위
넋 놓고 감상할 만한 풍채 뽐내

고성군 고성읍에서 서남쪽으로 22㎞가량 떨어진 거리에는 조선 말(고종 32년) ‘남부지방의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불렸던 동네가 있다. 하일면이다. 여기 또한 설 연휴 전후로 이어진 한파 영향을 비껴가지 못했지만, 입춘을 일주일여 앞두던 때인 지난 25일 꽁꽁 얼어붙은 날씨 속에서도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닷가 주위로는 한껏 날개를 펼쳐 보인 새 무리가 유유자적 하늘을 배회했다. 일부 널찍한 시골 텃밭에는 쪽파 싹이 조금씩 올라와 푸릇푸릇했다. 사철 내내 잎이 푸른 산자락은 녹음이 여전했다.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최석환 기자

◇‘국가등록문화재’ 전주 최씨 집성촌
고성군 하일면 학동돌담길 11-5. 국가등록문화재인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의 도로명 주소지다.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 가문이 300년간 살아온 마을로, 면 소재지를 가로지르는 산등성이와 구불구불한 길목을 여럿 넘으면 오래된 담벼락이 돋보이는 학동마을이 나온다. 이곳에는 옛 흔적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기와집과 담장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언뜻 봐서는 세월의 흔적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2~3㎝ 두께의 납작돌과 황토를 위아래로 겹쳐 만든 담벼락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크기와 높이가 일정하다. 얼추 사람 키만 한 또는 그보다 큰 것들이 모여 골목을 이루고 있는데 담장 상단 축성 방식이 특이하다. 돌과 흙으로 벽을 쌓은 다음 마무리를 기와로 하는 전통 담장과 달리 이곳 담장은 벽을 쌓는 판석을 맨 상단에 그대로 올렸다. 대신 벽으로 쌓은 돌보다 1.5~2배 정도 넓은 걸 사용했다. 별다른 생각 않고 올린 것처럼 보여도 빗물이 그 아래에 깔린 돌이나 벽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최석환 기자

수태산에서 채취한 돌로 쌓은 마을 석축은 더러는 담장이 됐고, 더러는 건물 외벽이 됐다. 마을 안에는 저마다 같은 형식으로 쌓인 소담스러운 돌담과 집들이 그림처럼 걸려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가옥도 드러나고,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도 보인다. 기존 담장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 현대식 집을 지어놓은 곳도 있다. 자연스럽고 정감이 넘친다. 담장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 그리고 전통 사대부 가문의 고택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정취를 뽐낸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25일 오후 고성 상족암을찾은 관광객들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최석환 기자

◇‘공룡 발자국 우르르’ 왜적 침입 대비 성곽도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을비포성지는 학동마을에서 약 7㎞에 조성돼 있다. 왜구 침입에 대비해 만들어진 성곽이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돌출된 낮은 산 경사를 따라 타원형으로 쌓여있다.

높이 3m, 길이 200m 규모다. 현재 일부 성벽과 북쪽 성문 흔적이 남아 있다. 돌로 포장된 계단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탁 트인 공터가 드러난다. 지금은 겨울이라 볼 수 없지만, 성 안은 봄과 여름이 되면 초록빛 잔디 광장이 된다. 성벽 너머로 맑고 고요한 바다도 볼 수 있어 운치가 좋은 곳이다.

고성 소을비포성지. 성곽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최석환 기자

하이면에는 바위가 밥상 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상족(床足)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상족암군립공원이 꾸며져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상족암 주변 해안에는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상족암 동굴. /최석환 기자
상족암 동굴. /최석환 기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 발자국 화석 산지는 중생대 백악기 고생물 화석 산출지로 평가받는다. 공룡 발자국 화석과 새 발자국 화석이 다양하게 나왔다.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 해안을 따라 약 41㎞에 걸쳐 2000여 족 이상의 공룡 발자국이 있다. 브라질, 캐나다와 함께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 인정받는 이유다.

공룡 발자국을 훑으며 바윗길을 돌아가면 동굴 입구가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장소다. 암반에는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는데 같은 종류의 공룡 가족이 집단 서식한 것으로 보인다. 상족암 주변에는 선녀탕과 촛대바위·병풍바위·한려해상국립공원이 절경을 이룬다. 경사진 바위 능선이 수면에 비치고, 바다는 햇볕에 반사돼 반짝인다. 풍광이 한적하고 평화롭다.

사천 8경 중 하나인 코끼리바위. 남일대해수욕장 주변에 있다. /최석환 기자

◇고성 너머 사천으로 이어지는 여행길
고성 구간이 육지 반, 바다 반이었다면 사천 구간은 대부분 바다와 함께한다. 사천에서의 첫 경유지인 코끼리바위는 남일대 해수욕장 동편 바닷가에 있다. 글자 그대로 코끼리 형상이어서 이 같은 명칭이 붙어졌다. 거대한 코끼리가 코를 바다로 늘어뜨리고 서 있는 모습인데 코와 몸통 부분 사이에는 천연동굴이 있다. 그 안에는 파도가 드나드는 과정에서 들어온 모래알과 조개껍데기 등이 하얗게 쌓여있다.

코끼리 형상의 바위가 별 게 있겠냐고 여길 수 있겠지만, 바깥에서 보는 풍광은 생각보다 빼어나다. 코끼리가 바다 밑으로 코를 담그고 있는 모습이 절묘하다. 안내판이 없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형태가 뚜렷하다. 바다도 드넓게 펼쳐져 있으니 요즘처럼 차가운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넋 놓고 감상하기 좋은 풍채다.

대방진굴항. /최석환 기자

바다를 끼고 있는 대방진굴항은 육지 쪽으로 물길을 내 전투선을 숨기는 용도로 만들어진 인공 항구다. 고려 말이던 1820년께 남해안을 빈번하게 침입했던 왜구 방어 목적으로 세워졌다. 큰 배 2척 정도를 넣을 수 있는 규모인데 당시에는 300여 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이 상주해 병선 정박지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수군 기지로 이용하는 등 거북선을 숨기던 곳이었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훑고 대방진굴항에 들리면 당대 수군의 비애와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제방 위로 올라서면 항구인지 모르게 위장이라도 한 듯 나무가 심겨 있고, 바로 앞에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공원화된 일대 좌우로 펼쳐지는 해안가는 과거 수군이 주둔했다는 걸 알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푸르다.

※길라잡이
남파랑길 33~34코스 주변으로 볼거리가 많다. 여행길 안내앱 ‘두루누비’가 안내하는 길을 충실하게 걷는 것도 좋겠지만, 잠시 구간을 이탈해 앱이 소개하지 않는 장소에 들러보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지역에서 크고 작은 주목을 받은 골목골목 여러 장소마다 옛 이야기가 녹아 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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