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기념사업회 수기집 펴내
정광준 씨 사제 총기 제작 누명 써
경찰에 붙잡혀 고문·조사 과정 담아
진상조사위 "추가 조사 진행할 것"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와 그 가족이 쓴 수기가 출간됐다. 지난해 10월 열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체험수기 공모전에 접수된 작품을 묶은 책이다. 특히 이번 수기집에는 그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마산 사제총기 사건’에 중요한 자료가 될 증언도 포함됐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마항쟁 체험 수기집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을 펴냈다. 수기집에는 항쟁 참여자, 목격자, 관련자 자녀 등 13명이 바라보고 겪은 부마민주항쟁이 담겼다.

최우수상 격인 민주상을 받은 정광준(66·미국) 씨 수기는 친구 김종철을 회상하며 쓴 편지글이다. 김종철은 1979년 10월 19일 마산 시위현장에서 붙잡혀 부산 계엄사 합동수사단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을 앓던 그는 1997년 4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 씨는 김종철과 함께한 어린 시절 추억부터 부마항쟁 때 잡혀가 고문당한 사연까지 글로 옮겼다. 정 씨는 사제 총기 제작 혐의로 부산 계엄사 합동수사단에 끌려갔다. 자신이 사제 총기 제작자로 지목된 사실은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당시 삼성라디에이터에서 부품 품질 검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책상에서 스프링이 나왔다는 이유로 사제 총기 제작자로 내몰렸다.

최창림(왼쪽 둘째) 당시 마산경찰서장이 1979년 10월 20일 부마민주항쟁 경위를 밝히며 시위 과정에서 사제 총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최창림(왼쪽 둘째) 당시 마산경찰서장이 1979년 10월 20일 부마민주항쟁 경위를 밝히며 시위 과정에서 사제 총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마산 사제 총기 사건은 1979년 10월 18~19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난 직후인 20일 최창림 당시 마산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 현장에서 총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최 서장은 이를 근거로 항쟁 배후에 불순세력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 씨는 수기집에 이렇게 썼다. “그 스프링은 라디에이터 캡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이고 나는 그 스프링도 품질 검사하는 사원이었기에 사제 총과의 관련은 그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지.”

그는 수사관이 주변 인물까지 수사했지만 자신이 사제 총기 제작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수기집에서 “그런데 정작 그들(수사관)이 기대하였던 사제 총을 내가 제작했다는 얘기가 없자 그 과정에서 온갖 구타를 당해야만 했던 것이었지”라고 적었다.

또한, 정 씨가 쓴 글에는 조사 과정에서 당했던 고문과 수사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있다.
이번 수기집에는 이창곤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장이 항쟁 관련자로 겪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관한 글도 실었다. 그는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친구 3명을 동조자로 지목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고통받은 사연을 글로 풀어냈다.

이외에도 항쟁 참여자 아들, 딸이 바라본 부마항쟁 글도 담았다.

이은진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번 수기집에 실린 정광준 씨 이야기는 진상규명위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당시 마산에서 사제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만 누가 지목돼 잡혀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일자, 조사 내용 등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지만, 총기 제작자로 지목당한 당사자가 처음으로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며 “진상규명위에서도 정 씨가 밝힌 내용을 토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오는 26일 오후 5시 30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식당 해송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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