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벽화 20년 넘게 기록한 사진가
전통사찰 불상·불화·노거수 등 담아
그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풍성

1년 중 거의 300일을 길에서 보내는 사진가. 궁궐, 전통 사찰, 향교, 서원, 사당 등 전통 목조 건축에 남아 있는 단청과 벽화 등을 20년 넘게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노재학 작가가 2019년 <한국 산사의 단청 세계>(미술문화), 2021년 <한국의 단청>(미진사)에 이어 전통 사찰의 꽃살문, 목조각, 단청장엄, 불상, 불화, 그리고 노거수까지의 고귀한 빛을 담은 책 <산사명작>을 펴냈다.

이 책은 전통 사찰이 품은 다양한 예술 작품 사진뿐만 아니라 그 그림에 담긴 독특한 이야기가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그림 중에 '반야용선도'라는 게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란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이룬 곳으로, 즐거움이 가득한 불교도의 이상향이다. 이곳으로 가는 배가 '반야용선'이다. 탱화나 벽화로 많이 묘사된다. 불화에서 '극락왕생도'나 '관경16관변상도'의 한 부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일본 서복사 소장 고려불화 '관경16관변상도',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서울 안양암 대웅전 '극락구품왕생도' 등이 그렇다. 단독으로 그려진 것은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반야용선도' 등이 있다.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 반야용선도./노재학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외벽 반야용선도./노재학

반야용선도는 용이 배를 끌고 바다를 건너는 그림이다. 배는 선수와 선실, 선미로 나눌 수 있는데 배의 앞에는 인로왕보살이 서 있고 뒤에는 지장보살이 서서 운항과 안전을 살핀다. 중앙에는 대체로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아미타여래 삼존이 극락으로 가는 왕생자들과 함께 있다. 성보박물관의 '반야용선도' 역시 그러한 구도에 맞춰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통도사 극락보전 벽화처럼 기본 구성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반야용선도는 사찰마다 조금씩 그림이 다른데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 반야용선도에는 남사당패가 탑승하고 있다. 이곳은 전설적인 남사당패 꼭두쇠 바우덕이가 활동했던 곳으로, 스님의 손에 자란 그가 절에서 써준 부적을 팔아 불사에 보탰기 때문에 남사당패도 반야용선에 탈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또 사찰 대들보 아래에 걸친 '용가(龍架)'라는 구조물이 반야용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용머리에서 내려온 줄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인형이 있어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를 '악착보살'이라고 하는데 속세의 가족과 얘기하느라 뒤늦게 배가 떠난 걸 보고 달려가 줄을 잡고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창녕 관룡사의 용선대 역시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반야용선이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 닫집 부분./노재학
부산 범어사 대웅전 닫집 부분./노재학

사찰 대웅전에 들어가 고개를 들면 집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닫집이라고 한다. "닫집은 집의 형식을 빌렸지만 본질적으로 궁전이다. 순천 선암사 원통전, 순천 송광사 관음전 등에선 법당 내부에 아예 별도의 보궁을 마련해 두기도 한다. 몇몇 불전 닫집 처마에는 편액을 걸어 부처님께서 상주하는 보궁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99쪽)

범어사의 대웅전 닫집은 정면 5칸, 측면 3칸 구조의 아자형(亞字形) 보궁인데 그 무게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천장에 매달려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중력을 거슬러 떠 있는 닫집의 비밀을 막상 알고 보면 싱거울 정도다. 닫집 지붕을 양 대들보에 걸쳐서 하중을 받게 했다. (…) 거기다가 힘이 가장 많이 실리는 정면 중앙부에 활주 두 기둥을 보강함으로써 보궁의 하중을 안전하게 받아내렸다."(100쪽)

양산 신흥사는 사찰이 통째로 벽화 박물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벽화가 많다. 노 작가는 "양산 통도사 영산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안동 봉정사 영산암 웅진전 벽화만큼이나 소재, 표현 등이 풍부하고 다양하다"고 했다.

'관음삼존도' 벽화에 대해 노 작가는 "무대는 보름 달빛이 파도를 타는 보타낙가산의 바닷가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의 선율이 흐를 것 같은 이 낭만적인 장면의 모티프는 <화엄경> '입법계품'이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는 구도 여행을 계속하다 스물여덟 번째 찾아간 곳이 수월관음이 계신 보름 달빛의 바다다"(315쪽)라고 표현했다. 책을 통해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불광출판사. 487쪽. 3만 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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