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식당 지킴이 김덕성 씨
매년 겨울철 몽골서 고성까지
3000km 비행 수백 마리에 먹이

먹이주기뿐 아니라 구조, 치료
국제적 민간교류 작업도 진행
26년간 보살핀 이유 '종 보존'
"따오기 사례 거울삼아 관심을"

“수리야, 수리야.”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헐벗은 논 한가운데, 김덕성(72) 씨 시선은 하늘에 멈췄다. ‘보통 오전 10~11시 즈음 내려앉아 고깃덩이를 먹는데 오늘은 좀 늦네….’

김 씨 주변 논바닥에는 고깃덩이가 군데군데 뿌려졌고, 푸른 하늘에는 거대한 독수리 무리가 매끄럽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고깃덩이를 재차 흩뿌린 김 씨가 논을 빠져나와 농로에 닿은 그때, 함성이 터졌다. “와!” 독수리 무리가 논에 내려앉는 장관에 독수리생태체험관을 찾은 이들 눈이 커졌다.

“스바라시(훌륭하다).” 야생조류를 살피러 한국에 들렀다는 일본인 손님도 연방 카메라 셔터 단추를 눌렀다. 한숨을 돌린 김 씨도 함께 독수리 무리를 응시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독수리는 매년 겨울을 나려고 3000㎞ 거리를 가로질러 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을 찾은 독수리 무리는 오는 3월 다시 몽골로 떠나 둥지를 틀 전망이다.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한 논에 독수리 무리가 먹이를 먹으려고 내려앉았다. 논 가까이 독수리생태체험관을 찾은 한 일본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최환석 기자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한 논에 독수리 무리가 먹이를 먹으려고 내려앉았다. 논 가까이 독수리생태체험관을 찾은 한 일본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최환석 기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준위협 등급인 독수리는 혹독한 몽골 추위를 피해 먹이를 찾아 한국을 찾는다.

독수리식당은 한국을 찾은 독수리 무리가 안락한 겨울을 보내도록 먹이를 주는 장소를 뜻한다. 경남지역 독수리식당은 고성이 본점이라면 김해, 창녕, 거제, 통영은 분점이다.

1997년 철성고등학교 교사였던 김 씨는 우연히 죽어가는 독수리를 보고 먹이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올해 퇴직 9년 차, 교직에서는 이미 물러났지만 독수리식당은 그대로다.

부침이 없었을 리가. 처음에는 먹이를 얻어서 논에 두고 먹이다가 민원이 생기면 옮기기를 여러 차례, 지금은 겨울에 농사짓지 않는 논을 빌려 먹이를 준다.

일주일 네 차례, 한 번 줄 때 300㎏가량, 독수리 먹이는 주로 고기 부산물이나 비계다. 독수리는 사냥은 거의 않고 동물 사체를 먹는다. 먹이는 냉동창고에 뒀다가 꺼내서 준다. 2월에는 몽골로 떠나기 전 체력을 비축하라고 더 내어준다.

독수리 번식지이자 서식지인 몽골 환경은 개발이나 기후변화로 먹이경쟁이 심화했다. 오로지 살아남고자 한국을 찾는 독수리는 1~3세가량 어린 개체다. 먹이를 찾아 밀리고 밀린 개체가 겨우 닿는 곳이 고성인 셈이다. 먹이를 찾기 어렵다면 축사를 기웃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독수리식당 지킴이’ 김덕성(72) 씨가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한 논에서 독수리 무리를 살피고 있다. /최환석 기자
‘독수리식당 지킴이’ 김덕성(72) 씨가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한 논에서 독수리 무리를 살피고 있다. /최환석 기자

김 씨가 처음 먹이를 줬을 때 100여 마리였던 독수리는 800마리가량으로 늘었다. 실제 독수리는 비무장 지대를 중심으로 겨우살이를 하다가 개체군 규모가 커지면서 남부지방까지 확장했다.

물론 26년 운영한 독수리식당 소문이 대대손손 이어진 까닭도 있겠지만, 단순히 먹이만 줬다고 신뢰가 쌓였을까. 지치거나 아픈 독수리를 구조하고 치료하는 일도 김 씨 몫이다. 다 보살핀 몇몇 개체에는 꼬리표를 달아 이동경로도 살핀다. 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 단말기를 부착한 개체도 있는데 ‘고성이’와 ‘몽골이’다.

고성이와 몽골이는 2020년 탈진했다가 구조, 치료를 받은 다음 고성에 방사한 개체다. 2021년 GPS 단말기를 달고 몽골로 돌아간 두 마리 독수리는 연대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지난해 문화재청과 고성군 고성독수리조사단은 몽골에서 고성이와 몽골이를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벌였고, 학술교류도 치렀다. 김 씨는 “2018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민간 교류를 타진하는 등 몽골, 중국, 북한, 남한을 잇는 작업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3년간 GPS를 단 독수리는 네 마리로, 올해 두 마리에 추가로 GPS를 달 계획이다.

김 씨가 독수리 무리에게 먹이를 내어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수리가 3살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20%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며칠 전 고압선에 걸려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를 구조한 일도 있고요. 종 복원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따오기를 보세요. 다음 세대가 독수리를 보려면 계속 지켜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오기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로 1979년 명맥이 끊겼다가 창녕 따오기 복원 사업으로 겨우 되살렸다. 김 씨는 “올해 기후변화 탓인지 평년에 견줘 한국을 찾은 독수리 개체수가 줄었다”며 “어떤 의미에서든 주목할 지점”이라고 조심스레 걱정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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