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키운 연기자 꿈
경남 정착 후 비로소 배우의 길로
"힘 닿는 데까지 공연하고파"

진주 극단 현장 황윤희 배우. /극단 현장
진주 극단 현장 황윤희 배우. /극단 현장

‘연극배우 황윤희’.

그의 프로필 맨 앞장에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다. 네모난 A4용지 하얀 바탕에 일곱 글자를 검은 글씨로 새겨 넣었다. 직함란 첫 줄에 ‘연극배우’를 가장 먼저 표기하는 건 이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정체성을 찾기까지 시행착오가 없던 건 아니었다. 경사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골목과 터널을 넘고 또 돌았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극단 현장 황윤희(48) 배우는 학창 시절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다. 춘천YMCA 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고등학교 때 우연한 계기로 연극을 접한 게 발단이었다. 그러다 동네 극단에서 워크숍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극단에 찾아갔다. 현재 연극사회로 이름을 바꾼 춘천지역 극단 태백무대였다. 그곳에서 황 배우는 생애 처음 연극다운 연극을 경험했다. 고2 때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꿈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연극영화과 진학은 포기했다. 금전적 문제로 연기학원을 다니기 어려웠던 그는 원하던 학과 대신 그와 비슷한 계열이라고 생각했던 방송연예과를 선택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월급 받는 삶을 살길 바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황 배우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그때도 연극영화과에 가려면 입시학원에 다녔어야 했거든요. 그래야 전문적인 연기를 배울 수 있었어요. 집안 사정상 학원에 다닐 만한 형편은 못 됐어요. 그래서 연극영화과 대신 방송연예과를 선택했어요. 거기는 낭독시험만 보면 되더라고요. 워낙 성우처럼 목소리를 바꿔서 말하는 걸 좋아했던 터라 낭독이라면 내가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컸어요. 경쟁률이 25 대 1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합격하게 돼서 대학을 가게 됐죠. ‘서울예대 아니면 난 아무 곳도 안 가겠다’라고 우겨서 가게 된 거였어요.”

극단 현장 황윤희 배우. /극단 현장 

부푼 꿈을 안고 서울예대에 입학한 그였지만, 대학 진학 이후로는 다른 길을 걸었다.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음에도 좀처럼 나서지 못했다.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학교생활 내내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연출, 조연출, 음향, 편집, 카메라 등 스태프 일만 도맡았다.

“1993년부터 1995년도 사이 우리 학교는 연예인들 천지였어요. 외모도 빼어나고 옷도 화려하게 입는 그런 사람이 많았죠. 그들과 갭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사이에서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공부도 손에서 놓았죠. 학교를 4년 동안 다녔어요. 방황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이어졌는데 그때 이모부가 운영하던 속셈학원에서 2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TV 토크쇼를 보니 이윤택 선생님이 출연자로 나와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천성대로 살아라’라고요. 사회자가 후학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으면 해달라고 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학원을 그만뒀어요.”

황 배우는 자신의 천성을 찾아보고자 열흘 동안 배낭 하나 메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그 기간 이전부터 가져온 꿈이 바뀌지 않는다면 당시 이윤택 씨가 이끌었던 밀양 연희단거리패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의 꿈은 변하지 않았고, 이후 그는 밀양연극촌에 갔다. 그러고는 이 씨에게 “연극 밥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연기를 하는 게 최종 목표지만, 당장 연기를 안 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은 받아들여졌다. 2년간 연희단패에서 음향 스태프로 활동했다. 아쉽게도 그 기간 밀양에서 연극 무대에 설 기회는 거의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배우들보다도 자신이 연기 측면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얘기한다. 이 씨가 배우들에게 지적할 때면 옆에서 몰래 남의 지적을 자신의 메모지에 옮겨 적으면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밀양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자평하는 이유다.

극단 현장 황윤희 배우. /극단 현장

황 배우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다. 곧장 무대에 선 건 아니었지만 밀양에서 연이 닿은 극단 현장 고능석 대표(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를 만나 결혼한 뒤 경남에 정착하고 나서 배우의 꿈을 이뤘다. 지난 10년간 황 배우가 참여한 작품 수는 20여 편. 2016년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1인극 <신통방통 도깨비>를 제작, 지금까지 100회가량 관객과 만났다. 지난해 밀양에서 열린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경남 대표로 참가해 <나는 이렇게 들었다>(극단 현장)로 단체 금상을 받기도 했다. 경남연극제에서도 그는 현장 소속으로 대회에 나서 여러 차례 단체상 수상에 이바지했다.

돌고 돈 끝에 꿈을 이룬 황 배우는 무대에 오를수록 재미가 크다고 설명한다. 한동안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남들에게 자신이 배우라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는 그는 이제 당당하게 자신을 연극배우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재미를 느끼는 레벨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 같아요. 많은 시간을 배우로 살더라도 재미를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해요. 어떤 분은 의무감에 무대에 오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저는 굉장히 즐겁게 연극배우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을 만날 때 남다른 감정을 느껴요.”

오랜 꿈을 이룬 황 배우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힘 닿는 데까지 연극 무대에 서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직접 만들어서 관객 앞에 선보이는 것도 계획 중이다.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것 역시 그의 목표 중 하나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성장해 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배워나갈 생각이에요. 무대 위에 있는 제가 관객들에게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저를 보고 관객들이 행복함을 느끼면 좋을 것 같아요. 보는 사람이 행복한 배우,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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