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점령 왜적 섬멸 활약 그려
은유적 표현·역사 고증·배 만들기 과정 묘사 뛰어나

2002년 문학사상사 장편동화 공모전에 당선한 이후로 <똥 치우는 아이> <봉구뽕구 봉규야> <사랑해요 순자 언니><학폭위 열리는 날> <바다로 간 깜이> <이 물고기 이름은 무엇인고?> <허수아비 김 참봉> 외 다수 장편동화와 <랑> <부여의자> <백제신검> 등 역사 장편을 쓰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문주 작가가 이번에는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점령 왜적 섬멸 활약을 그린 역사장편 <독섬해전>을 펴냈다.

조선 말 학자 김려가 진해(지금의 진동·진전)로 유배 와서 쓴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백과사전인 <우해이어보>를 소재로 삼아 쓴 장편동화 <이 물고기 이름은 무엇인고?>가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고 <백제신검>은 무예소설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만큼 뛰어난 김 작가의 필력은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문주 작가 /경남도민일보DB
김문주 작가 /경남도민일보DB

소설의 첫 장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동트지 않은 새벽을 향해 바람이 물살을 세차게 밀었다. 이사부가 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출정하라!’ 모든 배의 기수들이 붉은 기를 올렸다. 깃발은 하늘을 향해 맹렬하게 나부꼈다. 수군 대장이 외쳤다. ‘닻을 올려라!’ 이사부는 첫 닻을 직접 거두어 올렸다. 이사부가 물레의 손잡이를 돌리자 묵직한 닻이 밧줄에 매달려 올라왔다. 닻은 날렵하게 몸의 물기를 털어내고 배의 앞머리에 앉았다. ‘돛을 달아라!’ 수군 대장이 외치자 공중에서 돛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을 위해 떠나는 시점을 그린 231쪽에서 다시 그려진다.

소설을 읽다 보면 김문주 특유의 은유적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바람이 강 물결을 밀어내고 있었다.”(34쪽) “마른 모래가 발밑에서 사스락사스락 맑게 울었다”(38쪽) “노란 몸통이 드러난 나무들은 줄지어 누워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73쪽)

김문주 역사장편 독섬해전 현장 답사 중 독도에서 찍은 사진./김문주
김문주 역사장편 독섬해전 현장 답사 중 배 안에서 본 독도./김문주

이뿐만 아니라 <독섬해전>은 역사 고증에도 철저함을 보인다. 왜적과 첫 싸움에서 공을 세운 이사부가 실직(지금의 삼척)으로 발령받아 가는데, 여기서 수군을 양성하기 위해 먼저 배를 만들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실직 왕족 출신 안일공을 찾는다. 안일공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신라에 복속되기 전 실직국의 마지막 왕 안일왕을 모델로 한 등장인물이다.

“안일왕은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그 이름을 가져와 썼고요. 삼척에 가면 실직의 마지막 왕족 묘도 있습니다. 삼척에 가서 두루 둘러보았지요. 울릉도 독도도 가봤고요.”

김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 고증을 단지 자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현장을 답사했기에 소설의 서사가 더 명확하고 현장감 있게 묘사되었을 것이다. 왜놈들이 실직에 쳐들어와 바닷가에서 백성을 살육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19금이다. 이 장면은 실제로 고려사에 언급된 내용이기도 하다.

“해골을 쓴 왜장이 칼을 쳐들더니 그대로 아이의 배를 갈랐다. 아이의 어미인 듯한 아낙이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 왜장은 아이의 내장을 바다에 쏟았다. 빈 뱃속을 바닷물로 씻어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아이의 몸을 안고 나와 백사장에 눕혔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이의 뱃속에 담았다. 하얗게 흘러내리는 것이 쌀 같았다.”(11쪽)

소설을 읽다 보면 유독 배 만드는 기술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장면을 많이 만난다. 그만큼 김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이사부의 수군 양성에 전투 배 건조를 중요한 과정으로 삼았다.

김문주 역사장편 독섬해전 현장 답사 삼척시 성북동에 있는 실직국 마지막 왕조의 무덤./김문주
김문주 역사장편 독섬해전 현장 답사 중 삼척시 성북동에 있는 실직국 마지막 왕조의 무덤./김문주

이사부가 안일공을 찾아가 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배 만들기 기술자 쌍노가 수침법을 설명한다. “소나무를 베어 일이 년 물에 푹 담갔다가 건져서 또 한 일 년을 말려야 배를 만들 나무가 됩니다.”(34쪽) “배의 몸체는 나무 향을 풍기며 부드러운 선을 이루고 있었다. 저것이 배로구나 싶었다. 배 밑창은 통나무 세 쪽을 붙여 만드는데, 그 연결점은 암수의 몸처럼 홈을 파고 끼워 넣는 식이었다. 뱃전은 나무를 하나씩 쌓아 올려붙이는데, 그 연결점 역시 서로 잘 끼워 넣어 이음새가 표나지 않았다.”(78쪽)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렴한 왜적을 쫓아낼 때 나무사자를 만들어 협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트로이 목마’에 비견되는 전쟁사의 계교로 비견된다. “조그만 섬나라에서 어찌 감히 사자를 보았겠느냐? 모든 짐승의 왕인 사자들이 너희 군사들을 갈가리 찢어놓기 전에 항복하라.”(233쪽)

오랜 역사 속의 인물 이사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이사부가 젊은 시절 우산국을 점령한 후 기록이 전혀 없다가 말년에 진흥왕의 아버지가 된 것으로 잠시 언급됩니다. 그 사이 삼십 년 정도의 흔적이 없는 점을 의아하게 여겼고요. 굳이 우산국을 정벌해야 했을까 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우산국 정벌 전까지 거의 매년 서라벌이 왜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성문을 닫고 있다가 물러가는 적의 후미를 치는 게 다였고 한 번도 전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산국을 친 이유가 왜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하고 고대의 배부터 찾아보고, 수군의 배를 만드는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산지니. 268쪽. 1만 6000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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