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를 열어야만 간신히 드러나는 낙동강 생명 쉼터 모래톱을 영남지역 시민들이 함께 걸으며 조금만 더 지켜달라고 빌었다.

14일 오전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에 50명 남짓 사람 발자국이 찍혔다.

‘2023 낙동강 모래톱 걷기·모래 모시기’ 행사로, 대구환경운동연합·창녕환경운동연합·회천사람들이 주관하고 낙동강네트워크가 주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경남을 비롯한 대구, 경북, 울산 등 영남권 시민들이 참여했다. 낙동강 모래톱을 지키려고 연대한 발걸음이었다.

모래톱에는 먼저 들른 고라니 발자국이 선명했다. 목을 축이러 모래톱을 지나 물가를 들른 모양. 고라니 발자국마저 새삼 반가운지 연신 감탄이 터졌다.

오미란(50·울산) 씨가 14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모래톱을 만끽하고 있다. /최환석 기자
오미란(50·울산) 씨가 14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모래톱을 만끽하고 있다. /최환석 기자

“지금 수심이 가장 깊은 데가 1m 즈음이라 야생동물이 물을 마시고 건너기도 합니다. 모래톱에는 새도 여럿 삽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설명했다.

오랜만에 내린 비까지 스며 모래톱은 더욱 보드라웠다. 맨발로 걸어보라 유혹하는 듯했다. 오미란(50·울산) 씨가 유혹에 빠져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졌다.

“평소에는 모래톱이 물에 잠겼다가 잠깐 드러난다는데 감개무량합니다. 걷는 자체가 행운이죠. 무척 아름다워요.”

우즈베키스탄 출신 울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아자머브 압버스존(23) 씨는 “아름다운 낙동강 모래톱을 보존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우리를 원망할 듯하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울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아자머브 압버스존(23)이 14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에서 거둔 쓰레기를 들고 있다. /최환석 기자
우즈베키스탄 출신 울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아자머브 압버스존(23) 씨가 14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부리 박석진교 아래 모래톱에서 거둔 쓰레기를 들고 있다. /최환석 기자

낙동강 모래톱은 평소 잠겼다가 겨울 철새가 들르는 즈음 은백색 자태를 드러낸다.

가까운 합천창녕보(이하 합천보) 수문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22일까지 열렸다. 수위 조절 계획상 오는 17일부터 31일까지 서서히 닫힐 전망이다.

자리를 옮겨 경북 고령군 회천 독수리식당에서 고령군 우곡면 포2리 곽상수 이장에게 모래톱이 왜 중요한지 엿들었다.

독수리식당은 겨울을 나려고 들른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모래톱 구간이다. 독수리는 넓은 모래톱에 내려앉아 쉰다. 결국, 모래톱이 드러나서 차려진 식당이다.

영남권 시민이 14일 합천보 상류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 모래톱에서 낙동강이 온전히 흐르기를 바라며 절을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영남권 시민이 14일 합천보 상류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 모래톱에서 낙동강이 온전히 흐르기를 바라며 절을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합천보를 열면 모래가 드러나고 닫으면 잠깁니다. 독수리는 12월 중순 왔다가 3월 초 즈음 다시 몽골로 날아갑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모래톱을 지키면 좋겠습니다.”

독수리뿐만 아니라 회천에는 최근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도 나타났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낙동강에 드러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강, 둔치, 산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생태가 죄다 도로로 끊긴 마당에 겨울철 잠시 드러난 모래톱은 더욱 귀하다.

합천보 상류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 모래톱에서 영남권 시민은 생명의 강 낙동강이 온전히 흐르기를, 낙동강을 끼고 농사짓는 농민이 물 걱정 없기를 바라며 절을 올렸다.

보 수문을 여는 기간은 양수장을 가동하지 않는 시기와 겹친다. 현재 관리수위에 맞춰진 취·양수장 취수구는 보 수문을 열면 물 밖으로 드러난다.

합천보 상류 농가 농업용수 공급 요청이 당장 없으면 보 수문은 더 오래 열릴 전망이다. 마침 단비가 내린 터라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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