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산·제석봉서 보는 산과 바다
섬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어느새 길 따라 역사·문화 볼거리
공룡타조랜드 체험·관광 재미도

남파랑길 구간을 따라 통영에서 고성으로 넘어가면, 산과 바다는 멀어지고 들은 점점 가까워진다. 통영에서는 바다를 낀 절벽이 눈 안 가득 담겼지만, 고성에서는 이런 풍광이 먼발치서도 보이지 않았다. 오르내림이 큰 산자락이 시야 닿는 데까지 펼쳐지던 모습도 볼 수 없다. 대신 고성에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 집산지를 훑고 간다. 두 도시를 가로지르는 코스를 오가면서 달라진 풍경을 꺼내 보는 재미가 여정 내내 이어진다.

◇한려수도 섬 품은 통영 발암산 제석봉

광도면 용호리에 가면 해발고도 300m가 안 되는 산 하나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발암산이다. 산 길목을 남북으로 구분하면 아래쪽, 동서로 나누면 서쪽 귀퉁이에 산과 바다가 일정 거리를 띄워놓고 마주한다.

이 산은 해발고도가 276.5m다. 위아래로 뻗은 산줄기가 얹힐 듯 말 듯, 포개질 듯 말 듯하다 구불구불 연결된다. 제석봉 옆 바위 전망대와 발암산 전망대에서는 남해안 쪽빛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자락에서 보는 이런 풍광은 이 여정 중 으뜸으로 꼽힌다. 비경은 먼바다 위로 점점이 뿌려져 있는 무명의 섬들도 주역이다.

양쪽으로 드리운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해변과 푸른 바다가 운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산봉우리 바위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통영 바다는 시내 뒤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망자도, 장도, 장구도, 필도와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대조를 이루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바다와 가까운 이들에게는 큰 볼거리가 되진 않겠지만, 고된 산행으로 지친 몸에 피로를 가시게 하는 데는 충분한 듯한 느낌이다.

산 너머 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쭉 이동하면 도덕산과 시루봉 줄기다. 두 곳 역시 앞서 지나온 산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도덕산은 지리산에서 뻗어온 낙남정맥에서 갈래를 친 통영지맥이 벽방산을 거쳐 흘러가는 산줄기에 솟은 봉우리다. 고성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통영을 둘러싼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시루봉은 거제도의 여러 산을 훑을 수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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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등재된 전통 탈춤과 고성탈박물관

산 넘고 산 넘어 고성군에 들어서면 길목마다 문화시설과 맞닿는다. 대표적으로 고성읍 율대리에 있는 고성탈박물관(군립)과 도원미술관(사립)이 있다. 남산공원과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두 공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도 탈을 소재로 한 문화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끔 야외 탈 조형물을 배치해 관리·운영되고 있다.

고성탈박물관은 2005년 12월 이도열 전 고성탈박물관장 기증품을 기반으로 개관한 곳이다. 개인 전시관으로 운영되다 2014년 1월 전문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됐다. 지금은 군이 운영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16년간 박물관장을 지낸 이 전 관장은 현재 이곳과 도보 2분 거리에 도원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탈 전시관과 공방을 따로 운영 중이다. 그의 작업공간과 전시관에는 수십 년간 만들어온 탈이 수두룩하다.

고성탈박물관 앞 조형물. /최석환 기자
고성탈박물관 앞 조형물. /최석환 기자
고성탈박물관 전시품. /최석환 기자

탈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전국 각 지역 탈 300여 점이 들어서 있다. 주요 지역별 탈 문화를 조명하는 공간이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고성오광대를 소개하는 주제 전시가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1964년 12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성오광대는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오방)를 상징하는 광대가 하는 놀이라는 뜻에서 오광대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기획전에서 따로 조명되고 있는 고성오광대는 지난해 11~12월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한국의 탈춤을 등재하기로 한 결정이 나온 이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고성을 비롯해 사천 가산, 진주, 통영, 김해오광대까지 경남의 5개 탈춤을 포함한 ‘한국 탈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 국내 22번째 사례다.

고성 송학동고분군. /최석환 기자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여행길

고성 하면 역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게 가야다. 송학동고분군으로 대표되는 고성 소가야는 너른 한려수도 앞바다를 무대 삼아 위세를 떨쳤다. 고성지역 가야국은 남해안 교역 중심지이자 대외교역 거점이었는데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외교와 교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소가야는 바닷길을 매개로 선진지역과 교류했다. 5세기 이후 중국, 일본 등 외래 문물의 경유지이자 집산지였고, 일본열도와 영산강 유역 문물이 가야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경상도 내륙 신라계와 대가야계 문물이 일본열도와 영산강 유역으로 나가는 주요 기항지이기도 했다.

고성 송학동고분군. /최석환 기자

이를 증명하는 유적이 고성에 여럿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고성읍에 있는 송학동고분군은 규모 면에서나 출토 유물에서나 과거 소가야국 중심 세력이 묻힌 무덤 유적이라는 점을 잘 일러준다. 도시 속에 남은 왕릉으로 군민들에게는 휴식처와 같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무덤 주위로 난 산책로를 걸으려는 시민들이 수없이 오가는 명소가 된 지 오래다.

고성에는 새로 뜨고 있는 목장도 있다. 2021년 4월 개장한 공룡타조랜드다. 김현희 대표가 1500평 규모로 목장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70~80여 마리 타조가 사육되고 있다. 관광객은 직접 타조를 보는 것뿐 아니라 먹이를 주는 체험·관광 행사에도 참가할 수 있다. 관람료는 1만 1000원으로, 개장 이후 매월 2000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타조 무리는 날씨가 스산해도 푸릇푸릇 생기가 넘친다. 바가지에 옥수수를 담아서 줬다 하면 긴 목을 쇠창살 밖까지 내민 뒤 콕콕 집어 먹는다. 먹거리를 주더라도 입에 넣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동물과 어우러진 문화공간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 중 하나다. 목장 안에서는 타조뿐 아니라, 말도 일부 사육되고 있다.

공룡타조랜드에 사는 타조들. /최석환 기자

길라잡이

통영의 마지막 남파랑길 구간은 거의 모든 길이 등산로다. 시작과 동시에 숨이 턱턱 막힌다. 가파른 길이 계속돼서 그렇다. 산속에 들어서면 이쪽저쪽으로 방향 또한 곧잘 꺾여버린다.

여느 산이 그렇듯 봉우리까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산 넘고 산 넘어야 종점에 도착할 수 있다. 크게 이름난 산은 아니지만, 소나무 숲 사이로 굽이진 등산로 난도가 만만찮다. 쉬엄쉬엄 산을 오가길 바란다.

고성은 평탄한 길 위주여서 어려운 건 없다. 다만 차도 위를 걷는 시간이 길어서 교통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인적이 더 드문 도롯가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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