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지역이었던 마산과 창원에서 일어났던 노동자투쟁의 역사가 이제 기억 뒤편으로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기성세대가 은퇴하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먼 나라의 별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그저 잊어야만 하는 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노동현장에 존재해왔던 다양한 문제들은 한순간에 누군가의 의지로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졌던 누군가의 실천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산업화 시대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노동자 목숨이 역사의 제단에 바쳐졌던 일들을 그저 과거 잘못된 관행이나 구시대적인 착오로만 여겨선 정말 곤란하다. 법으로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처절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과거의 해프닝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선배노동자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노조활동이 가능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지극히 간단명료한 결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의미를 가지려면 과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이 존재해야 한다. 흘러간 옛날의 사건이나 일이라고 하더라도 현재라는 시점으로 맞추어 다시 불러내려는 의지는 바로 교육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의 공동체가 영속적으로 존재하려면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성찰적인 집단이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한두 사람의 선한 의지를 앞세우기보다 집단적인 성찰을 가능하도록 하는 교육이라는 기제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기억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노동역사관 건립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부·울·경 지역에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희생당한 노동열사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노동역사관 건립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건립 예정 지역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건설 자체가 미지수인 상태에 놓였다. 노동역사관을 사회적 혐오시설로 취급하는 인식을 탓하기보다 노동역사의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오히려 도심에 역사관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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