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행동 과장, 풍자하기에 남성이 전유물로 여기는 배역
삶과 죽음의 이야기 통해 삶의 애환 담은 캐릭터라서 매력
초등학교 땐 체조선수...사회든 노래든 시키면 안 빼는 성격

안민선(60) ㈔경남민족예술단체총연합(경남민예총) 사무처장. 그를 직접 만난 건 최근의 일이다.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현수 경남민예총 이사장과 함께 승용차에 합석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안민선이라는 이름은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2~3년 전부터 탈춤 분야가 아닌 지역의 여러 사람에게서 그 이름을 들어왔던 터였다.

“마산오광대에서는 영감·할미 마당의 할미 역을 여자가 하는데.” “설마요. 오광대 탈놀음 중에서 그 할미 장면이 제일 야한데. 여성의 행동을 과장해서 풍자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남자가 그 역할을 맡잖아요.” “마산오광대에서는 처음부터 할미 역을 안민선이 맡았지.”

마산오광대 할미 프로필 사진./안민선
마산오광대 할미 프로필 사진./안민선

그 당시 마산오광대를 아무리 못 보아도 5번은 넘게 봤던 터라 귀를 의심했다. 집으로 돌아와 취재하면서 촬영했던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하고서야 할미 배역의 신체가 여성임을 알아차렸다. 합천밤마리오광대부터 진주, 가산, 통영, 김해, 거제영등오광대까지  많은 오광대 공연을 봤어도 할미 배역을 여성이 맡은 적이 없었기에 마산오광대에서도 그 배역은 당연히 남성이 맡았을 거라는 선입견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승용차 안에서 인사를 나눈 뒤로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안 선생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어쩌다 남자들이 하던 할미 역을 맡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인터뷰 핑계로 지난 7일 마산문화예술센터 시민극장으로 그를 불러냈다.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 역을 맡은 안민선 경남민예총 사무처장이 7일 시민극장에서 인터뷰를 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 역을 맡은 안민선 경남민예총 사무처장이 7일 시민극장에서 인터뷰를 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시민극장 2층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그 사연이 뭔지부터 물었다.

“그냥 처음부터 난 그냥 할미였어요. 대학 다닐 때 전통예술 동아리에 있었는데, 여름과 겨울방학 때 고성오광대전수관으로 일주일씩 배우러 갔어요. 탈춤 기본동작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마지막 날엔 발표하는데, 처음 내가 맡았던 배역이 할미였어요. 그 이후로도 쭉 할미 역할을 맡았어요. 선생님도 그러고 다들 나보고 할미 역할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할미 역이 나랑 딱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가 1982년이다. 고성오광대 전수하러 갔다가 처음 맡았던 배역이 그냥 자연스럽게 2006년 마산오광대 복원 작업을 시작할 때도 그의 역할로 이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할미 역에 눈독을 들였을 법도 한데.

“아무도 없었어요. 이중수 대표가 처음부터 그 역할을 나보고 맡아달라고 했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맡게 된 게 지금까지 온 거죠. 다른 사람도 할미 역은 당연히 안민선이라고 생각하는지 배역 가지고 말이 나오고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이제까지 할미 역만 맡았던 건 아니다. 양반 과장에 누가 한 사람 빠지면 대타로 뛰기도 했단다.

“한번은 콩밭골손을 맡게 됐는데, 눈멀이떼 탈을 쓰고 춤을 춘 거예요.”

하긴 대사 없이 비슷비슷한 역할이라 여러 번 번갈아 맡다 보면 그런 일도 생기겠다. 사실 연희자의 이러한 실수도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여간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뺏기지 않았고 공연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배역 할미의 매력이 뭘까.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 역을 맡은 안민선 경남민예총 사무처장이 2016년 5월 마산음악관 앞 마당에서 펼쳐진 마산오광대 공연에서 물레를 돌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 역을 맡은 안민선 경남민예총 사무처장이 2016년 5월 마산음악관 앞 마당에서 펼쳐진 마산오광대 공연에서 물레를 돌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정도 있고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또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그러고 보니 다른 오광대와 달리 마산오광대에선 할미가 예쁘게 치장하고 영감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서로 찾던 중 뒷걸음치다가 엉덩이를 부딪치며 엇갈리게 돌아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영감은 제물집이라는 첩을 데려온 데다 아기까지 낳게 되자 할미의 질투는 극에 이른다. 할미가 아기를 죽게 하자 영감이 폭력을 써서 할미를 죽게 하는데 이 비극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어쩌면 비극을 웃음으로 갈무리하는 풍자극의 매력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탈을 쓰고 공연하다 보면 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다른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고 동선을 찾아 움직여야 해서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다. 에피소드가 있을 듯하다.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와 영감이 서로 찾아다니다가 엉덩이를 부딪치는 장면./마산오광대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와 영감이 서로 찾아다니다가 엉덩이를 부딪치는 장면./마산오광대

“춤을 추다가 탈이 비뚤어진 적이 있어요. 밖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당황할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공연을 하면서 두 손으로 탈을 고쳐잡을 수는 없잖아요. 그땐 요령이 필요해요. 춤을 추면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바로잡는 거죠.”

서두에 언급했듯이 오광대의 할미 역할은 어지간한 외향적 성격으로는 소화하기 힘들다. 안 선생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빼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누가 시키면 밖에 나가 발표하는 걸 좋아했고 노래도 곧잘 불렀어요. 아버지는 제가 조금 더 크면 국악 하는 안비취(1926~1997) 선생한테 보내야겠다 하신 적도 있어요. 또 초등학교 때에는 체조선수를 했어요. 3학년 때 체력검사를 하는데 허리 굽히기 할 때 손이 30센티 밑으로 내려가니까 선생님이 ‘너, 체조 한번 안 해볼래?’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루운동과 평균대, 뜀틀을 했는데 공중제비돌기쯤은 예사로 했지요. 그런데 촌(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 있는 학교다 보니 선수도 별로 없고 해서 진해에 있는 학교와 합치게 되면서 잠시 전학해서 활동하기도 했죠.”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가 영감의 매를 맞아 쓰러지는 장면./마산오광대
마산오광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가 영감의 매를 맞아 쓰러지는 장면./마산오광대

체조에 소질이 보이자 학교에서는 체조부가 있는 중학교로 진학시키려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이 꼬이면서 체조와는 인연을 끊어야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무대 체질인 그의 끼가 다시 발동했다. 소풍 가게 되면 사회를 종종 맡았고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으레 친구들은 ‘안민선’을 연호했다.

어려서부터 누가 시키면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성격 덕에 지금까지 마산오광대에서 할미로 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할미가 부르는 노래 있지요? 그거 한 소절 불러줄래요?

“물레야~ 물레야~ 비빙 빙빙 돌아라~ 밤중 샛별이 산 넘어~ 간다~ 영감~ 우리 영감~ 어디메 있소~ 우리 영감 보고 지고~ 보고 지고.”

역시 빼는 법이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그의 매력이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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