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취재원 입 빌려 주장
근거 제시 않고 논리 비약

조선일보 앱 갈무리.

△'월급 안 줘도 파업 안 하네?'…노동혁명, 이미 시작했다

<조선일보> 앱 첫 화면에 올라온 기사 제목입니다. 임금을 안 받는 노동이 혁명적이라니, 무슨 말일까요? 사실은 경악할 낚시 제목입니다. 기사 제목을 누르면 <조선비즈>로 이동하는데요. 지난 2일 자 기사입니다. 여기에 달린 제목은 꽤 깁니다.

△韓 세계 1위 로봇 밀집도, 노동혁명 시작됐다… "365일 근무, 파업도 없어"

첫 단락은 서울 성수동 한 음식점에서 로봇팔이 1시간 동안 돈가스 70인분을 쉬지 않고 튀겨내고, 하와이안 덮밥을 완성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재료를 2g 내 오차로 계량하기 때문에 같은 맛의 음식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로봇의 장점"이라는 주방 로봇 업체 관계자 말도 살뜰하게 덧붙였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외식가를 파고든 산업용 로봇' 정도가 주제인 것으로 지레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만큼은 성급하게 독해력을 뽐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음 단락은 갑자기 <반지의 제왕> 오프닝 급으로 웅장해지니까요.

'로봇이 노동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튀김요리를 하는 로봇팔 묘사에서 이어지는 단락 첫 문장입니다. 첫 문단과 다음 문단 사이에 꽤 공백이 크군요. 독자가 스스로 작자의 의도를 생각하게끔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로봇팔로 튀겨서 만든 돈가스는 '노동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독자에게 와 닿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나 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들은 이음매가 더 헐겁습니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의 불법 파업과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제조업체들이 산업용 로봇 도입에 눈을 돌린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물건을 옮기는 등 단순 육체노동이 로봇으로 대체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노조가 사라지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선일보 기사 발췌.
조선일보 기사 발췌.

돈가스 튀기는 로봇팔을 맨 처음 소개하면서, 로봇이 노동혁명을 일으키고 있으며, 혁명의 원인이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이라고 하는 '빌드업(전개)'에 여러분은 공감하시나요? 위 인용한 문장에서 로봇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노조'가 사라지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인상적입니다. 기사 후반부에는 '불법 파업을 하지 않는 로봇 도입이 빨라지면서 노동의 종말이 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이는 모두 '일각에서' 아무개 씨가 주장한 것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월급 안 줘도 파업 안 하네?'라고 했듯이 일각에서는 파업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원인은 꽤 복잡다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강성노조, 불법파업, 고된 노동을 싫어하는 한국의 노동 문화 등을 원인으로 든다면, 최소한 그 근거는 명확하게 기사에 소개해야겠지요. 하지만 기사에서는 익명의 취재원의 입을 빌려 주장만 할 뿐 근거는 제시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더군다나 기사에 드러난 취재원 중에서는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을 대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사 쓰기가 다소 편향적이라고 평가합니다.

/김연수 기자 ysu@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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