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창단 이래 매년 공연 이어와
지역 사회가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키운다
3년 만에 열린 하늘 길로 ‘캄보디아’ 해외공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평범했던 일상이 파괴되고,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우리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이런 이유에서 경남도민일보는 2021년, 2022년 동안 ‘공존이 생존’을 강조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처지가 달라도 공생하고자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는데 기사의 무게를 두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양한 이주배경 아동 다문화 청소년 합창단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독자들께 공존이 곧 생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보여드리고자 함이다.

 

지난 17일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지난 17일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강당. 지난 17일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20여 명이 모였다. 아이들은 피아노 음률에 따라 발랄하게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다.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가 허공에서 만나 화음을 만들었다.

창원다문화소년소녀합창단 ‘모두’ 단원이다. 반복 연습에도 아이들 표정은 밝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연습이 한참 중단됐다가 다시 만나게 된 터라 반가움이 앞섰다.

◇합창단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 합창단 구성원은 모두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다.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 중도입국 청소년, 탈북청소년, 북한이탈주민 자녀 등을 통칭해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으로 부른다.

우리나라도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숫자가 늘기는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달라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합창단에선 차별도 없고 남들 눈치도 보지 않는다. 부모와 함께 중도에 입국한 아이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고충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체성 고민에 따른 갈등을 겪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인 아이들은 합창단 활동을 하며 고민을 주고받고, 서로에게 조언자가 된다. 같은 나라 출신 단원들은 부모끼리 가족 단위로 생일과 자국 명절에 교류도 한다. 

김예란(11·성산구 대방동) 양은 주말 아침마다 합창단 연습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지만,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 양의 어머니는 중국인이다. 김 양은 어머니 지인 소개로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은 이곳에서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등 부모 국적이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나이는 아홉 살부터, 많게는 열일곱 살까지 있다.

김 양은 “합창단 모두에서는 성별, 국적,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노래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철승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대표는 “합창단 모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 가정 2세가 학교생활에서 자긍심을 갖고, 이중의 문화적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다름을 오히려 자신들의 특성과 장점으로 이해하도록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캄보디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캄보디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연대 속에 자라는 아이들 = 지역 사회 연대 덕에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다. 지휘 담당 천홍아(56) 씨와 안무 담당 한소연(29) 씨는 재능기부로 아이들의 합창 연습을 돕고 있다.

천 씨는 “이주배경 아동 중에는 어머니가 한국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어머니 대변인 역할을 해서 그런지 속이 깊다”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소외되고,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 합창단 활동으로 잠재력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합창단 모두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7년째다. 천 씨는 창원대암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2016년부터 합창단 모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마산여자고등학교 재직 시절 만난 제자인 한 씨는 스승을 도와 주말마다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천방지축이기만 하던 아이들도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커가고 있다. 이들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연습할 때도 장난만 치고, 말도 안 듣고, 울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같이 연습하자”며 분위기를 이끈다.

한 씨는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초등학교 1~2학년으로 어렸고, 콧물을 흘려서 닦아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의젓하게 어른인 척하는 걸 보면 많이 컸다 싶다”며 “부모 국적이 다르고, 피부 색깔도 달라서 그런지 소극적인 아이가 많았는데 무대에 설 때마다 자존감이 올라가는 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캄보디아에서 해외 공연을 하고 있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이주배경아동청소년 합창단 모두 단원들이 캄보디아에서 해외 공연을 하고 있다.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어머니 고향에서 공연도 =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뚫리면서 합창단 모두는 3년 만에 캄보디아 프놈펜과 시아누크빌에서 공연을 했다.이들은 문화 교류 차원에서 그동안 베트남 하노이와 필리핀 마닐라, 중국 선양 등 아시아 각국의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해왔다. 

성가은(15·의창구 소계동)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필리핀 마닐라로 해외 공연 갔을 때가 정말 좋았다”며 “다른 나라에 처음 가보기도 했고, 공연도 하고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합창단 모두는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캄보디아-한국 문화교류 공연 무대에 올랐다. 아이들의 화음이 캄보디아에서 울려 퍼졌다.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특히 이번 국외 공연은 외가가 캄보디아에 있는 윤동혁(15·마산회원구 구암동) 군에게 의미가 깊다. 윤 군은 “코로나19 때문에 캄보디아에 갈 수 없어서 영상통화로만 어머니의 가족을 만났었다”며 “이번 캄보디아 공연에서 어머니의 가족들이 나를 보러 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직접 찍은 기념사진 속 아이들은 전통 의상을 입은 현지인들과 어울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차별이나 외로움 따윈 없었다. 대신 합창단 이름처럼 모두가 하나 된 아이들만 보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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