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1일 서울 김포 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베트남으로 출국하고자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1일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이날 언론은 다름 아닌 이 회장이 입은 패딩조끼에 주목했습니다. 이날부터 22일 오전까지 관련 기사가 30건가량 쏟아졌습니다. 취재 열기가 대단합니다. 보도 경과를 살펴보면 패딩조끼 홍보 → 완판 순으로 흘러갑니다. 

△이재용, 출장길 공항패션… "검소하다." 말 나온 패딩조끼 가격은(22일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2일 자정 무렵 기사를 보도합니다. 이 회장이 입은 옷이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다'고 소개하는데요. 정말 화제를 모은 게 맞을까요? 사실 화제가 돼서 쓰는 것인지, 화제를 만들려고 쓰는 것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언론이 화제가 됐다는 명분만으로 무작정 기사를 쓰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그보다 더 부적절한 것은 화제가 아닌데, 화제라고 쓰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직접적이든 은연중이든 담겨 있겠지요.

기사에서 화제가 모였다고 한 곳은 한 네이버 카페입니다. 누리꾼이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에서 보도한 사진을 갈무리해서 '이재용 패딩 베스트 어디껄까요?'라고 올렸습니다. 이 글은 21일 오후 1시 33분에 올라왔습니다. 본격적으로 관련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오후 3시 30분 전까지 댓글은 10~15개가량 달렸습니다. 화제를 모은 것이 맞을까요? 언론이 구매 좌표를 찍어줘서 그제야 화제가 된 것은 아닐까요?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제품인지 알려줍니다. 공교롭게도 이 패딩은 삼성물산 제품입니다.

'이 패딩 조끼는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빈폴골프' 제품 '남성 애쉬 코듀로이 다운 베스트'로, 삼성패션몰 판매가격은 43만 9000원이다.'(조선일보)

'검소한' 이 회장은 이튿날 '완판남'에 등극합니다.

△"이번엔 패딩 조끼"… '완판남' 이재용 공항 패션 공개되자 품절(22일 브릿지경제)

<브릿지경제>는 친절합니다. "삼성물산 패션 공식 온라인몰인 SSF샵에서 그가 착용한 회색 색상의 조끼는 22일 오전 현재 품절된 상태"라고 전합니다. <브릿지경제>는 이 회장이 자사 브랜드를 착용하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해당 제품은 직접 구매해서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소개합니다.

'하루만에 재고 1점 남았다'라고 부제를 쓴 서울신문 22일 자 기사. /갈무리

<서울신문>은 세심합니다. 공식 판매 누리집에 수량이 딱 1점 남은 것을 갈무리해 사진으로 첨부한 서울신문은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서 10% 할인된 39만 5100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어 "22일 오전 현재 같은 제품은 m 사이즈 단 1점을 제외하고 모두 품절된 상태"라며 "마지막 남은 상품을 클릭하면 '품절임박'이라는 안내가 뜬다"고 설명합니다.

<아시아경제>는 탐구합니다. 이재용 회장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입으면 다 팔린다…'회장님 패션'의 힘'이라는 제목을 걸고 재벌 총수 패션 경향을 분석했습니다. 공항패션 신드롬을 낳은 이재용,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정의선, 재활용 플라스틱 스니커즈를 신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시아경제는 이들을 통틀어 총수 일가가 세대교체돼 감각이 젊어졌다고 총평합니다. 

언론이 '화제를 모았다'는 명분으로 이 회장 옷을 홍보하고 그 옷이 완판되면 '완판남', '공항패션 신드롬'이라고 쓰는 일련의 보도 행태는 정형화된 순환 구조입니다. 홍보→완판→완판남!→홍보→완판→완판남! 무한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일단 '완판남'이라고 칭하면, 그다음에는 그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쓸 명분이 생깁니다. 실제로 계속 완판 기사를 쏟아내면 사람들이 그의 옷에 관심을 둘 수도 있고요. 이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이 회장 패딩조끼 완판 기사가 한 건 더 나왔네요. 

/김연수 기자 ysu@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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