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과 2022년 도내시장 비교
총 11곳 사라진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인구감소·재해 등 원인
이웃 시장 영향에 위축되거나
교통 발전이 소멸 이유 되기도

어쩌면 시장은 쉽게 잊혀지는 존재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은 20년 전 시장 목록을 오롯이 남겨둔 관계기관이 없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한정된 자료로 추적한 '시장 소멸' 원인은 복합적이다. 교통 발달과 고령화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피해를 입었거나, 주민이 시장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길 원한 경우도 있다. 

◇사라진 시장을 찾아서 = 통계청은 해마다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 경영실태조사'를 게시한다. 조사 기관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다. 공단은 전통시장 일반현황과 상인·상인조직 현황, 점포와 시설, 경영 현황 등을 조사해 수치로 내놓는다. 

사라진 시장 목록을 확인하려 공단에 2002년 경남 전통시장 목록이 있는지 문의했지만, 자료가 없었다. 공단 관계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999년 소상공인지원센터, 2005년 시장경영지원센터, 2006년 소상공인진흥원, 2010년 시장경영진흥원, 그리고 현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료가 없어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실태조사 담당자는 시장 이름이 담긴 과거 목록을 찾으려면 각 지자체에 묻는 게 정확하다고 했다. 

경남도에 20년 전 전통시장 목록을 요청했다.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장 상인회 단체는 회원사 목록이 있어 제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후 응답이 없었다. 시군 지자체는 누리집에 전통시장 현황을 게시하지만, 없어진 시장 이름까지 적어놓지는 않았다. 다만, 창원시는 누리집에 전통상업보존구역 현황을 안내하며 동양종합상가와 양덕종합상가가 등록 삭제됐음을 알렸다. 

국가정보포털(data.go.kr)에 올라온 2013년 전국 전통시장 목록과 경남도 누리집에 게시된 2022년 상반기 기준 전통시장 목록을 비교했다. 이 기간 동안 사라진 시장은 △거창군 위천공설시장 △남해군 고현공설시장 △남해군 동천공설시장 △창원시 동양종합상가 △창원시 양덕종합시장 △밀양시 구기시장 △산청군 문대시장 △산청군 차황시장 △진주시 미천시장 △하동군 악양시장 △합천군 대병시장으로 총 11개소다.

각 지자체에 어떤 시장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냐고 물었다. 답을 주는 곳도 있었지만 자료가 없는 곳이 많았고, '그런 시장이 있었나'라고 반문하는 곳도 있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휩쓸기 전 산청군 신안면 문대리에 문대시장이 있었다. 현재 문대리 모습. /주성희 기자
2002년 태풍 루사가 휩쓸기 전 산청군 신안면 문대리에 문대시장이 있었다. 현재 문대리 모습. /주성희 기자

 

◇태풍이 휩쓸어 간 산청군 시장 = 2002년 9월 태풍 루사가 경남을 덮쳤다. 220㎜ 이상 폭우가 내렸고, 산사태까지 이어져 큰 피해를 봤다. 인명피해도 사망 16명, 실종 1명, 부상 6명으로 컸다. 사유시설 피해액만 536억 원, 총 재산피해액은 5518억 원으로 추산된다. 도로와 교량 330개소, 하천 1574개소, 수리시설 1365개소, 기타 항만· 어항 등 모두 7636개소가 피해를 봤다. 그해 연말까지 이재민 피해 복구가 계속됐다. 

석야모(75) 씨는 1974년 산청군 신안면 문대리로 이사를 왔다. 결혼 후 첫 자녀를 출산한 때였다. 잠시 머무르려 했던 문대리는 석 씨 자녀의 고향이 됐다. 

석 씨는 2002년 루사 때를 기억한다. 문대시장 터였던 골목이 빗물로 잠겼다.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사람이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태풍은 건물 뼈대만 남기고 마을을 휩쓸고 갔다. 석 씨는 당시 문대리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사라졌다고 기억했다. 그는 "다른 장에 갔을 때 차황면 사람들이 차황시장도 같은 사정이라고 한탄한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신차로 왼편 일대가 예전 문대시장 터였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5일장으로 3·8일마다 장이 섰다. 다양한 상인들이 와 노점을 펴고 물건을 팔았다.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문대시장은 태풍이 오기 전부터 활기를 잃고 있었다. 석 씨는 "단성면 단성시장은 5일에 서고, 신등면 단계시장은 4일에 섰다"며 "문대시장은 지리적으로 그 사이에 끼어서 어느 순간 힘을 잃더라"고 말했다. 단계시장도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다. 석 씨는 "장날에 가보면 정오인데도 상인들이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그런 날이면 진주시로 넘어가거나 단성시장에서 장을 본다. 

석 씨는 가족구성원 수가 적어지면서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고 봤다. 석 씨는 "요즘 가족은 많아야 4명 아니냐"면서 "버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사니까 작게 파는 마트를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안면 한빈경로당에 있던 주민들은 "문대시장이 없어지고 나서 버스를 타고 하나로마트에 가거나 단성장에 간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기능을 잃은 시장들 = 군·면 단위 시장은 인구 고령화 영향을 받는 듯했다. 나이든 사람이 많아지면 경제활동이 뜸해지고 물건을 사는 횟수도 준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나이가 든 탓에 경제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하동군 악양면에 있었던 악양시장은 교통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1960년 개설된 악양시장은 대지면적 180㎡에 점포(2016년 기준) 9개가 있는 작은 시장이었다.

악양면에 사는 손지배(63) 씨는 정서리·정동리 사이에 난 도로가 하동읍까지 이어진 일이 크게 작용했다고 봤다. 도로가 생기면서 하동읍에 있는 규모가 큰 시장이나 마트 등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악양시장은 2017년 3월에 용도 폐지됐다. 

거창군 위천면에 있던 위천공설시장도 악양시장과 같은 이유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위천공설시장은 농업기술센터가 추진하는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터로 활용됐다. 위천공설시장 자리는 지난해 10월 어울림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에 활용된 시장이 또 있다.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에 있던 대병시장이다. 대병시장은 2019년에 폐쇄된 이후 7개 남짓한 점포로 시장 형태를 이어가다 결국 사라진 사례다. 미천시장과 지족시장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지만 시장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진주시 미천면 안간길에 있는 미천시장은 1962년에 개설됐다. 장옥으로 이뤄져 있고 대지면적은 426㎡이다. 5·10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다. 진주시는 미천시장 등록 취소를 앞두고 있다. 남해군 삼동면에 있는 지족공설시장도 마찬가지다. 규모는 점포 10개, 대지면적 1970㎡다. 장날은 4·9일이다. 점포들은 창고로 전락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공설시장 500m 이내에 있는 하나로마트를 이용한다.  

/주성희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