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회화 요소 작업 담긴 목칠공예
2022 김해시 선정 최고 명장에 올라
서각 장인으로 통제영 복원 작업 영광
"초지일관 자세로 따뜻한 기운 전할 것"

초지일관(初志一貫).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간 사람, 결국 최고 명장에 닿았다.

장용호(59) 목칠공예 명장이 1986년 처음 나무에 새긴 글이다. 그가 연필 깎는 칼로 느티나무에 쓴 초지일관, 30년이 훌쩍 넘은 오늘도 작업실 입구 가장자리에 걸어두고 있다. ‘2022년 김해시 최고 명장 - 목칠공예 부문’에 오른 장용호 학고방 대표를 지난 10일 김해시 진영읍 작업실에서 만났다.

느티나무와 벚나무를 활용한 장용호 명장의 작품. /학고방
느티나무와 벚나무를 활용한 장용호 명장의 작품. /학고방

◇목공예 그리고 목칠화 = 목칠공예는 조각과 회화적인 요소를 모두 겸한다. 나무를 주재료로 깎거나 빚어내는 목공예와 옻칠을 주원료로 색을 입히는 목칠화 과정을 통틀어 수행하기 때문이다.

장 명장은 “목칠공예를 한다고 하면 모르는 분들은 나무에 칠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며 “나무를 고르고 조각을 내거나 파내서 백골 작업을 마치고 거기에 10여 차례 반복해 옻칠하는 과정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보 ‘나전장식거울’은 통일신라시대 목칠공예품에 속한다. 목공예는 금속공예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그 기원을 살피면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나뭇가지·돌 등을 활용해 채집하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간석기 시대에는 나무를 용도에 맞게 자르거나 쪼개고 깎아서 활용했고, 철기 시대를 거치며 농기구와 목공 도구를 제작해 기능적이고 편리한 생활 도구로 자리 잡는다. 고려시대는 나전칠기·향로·고려청자 등 왕실과 사찰 중심으로 공예문화가 발달했는데, 그중에서도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목재의 비틀림을 막고 정교한 각자(刻字) 기술로 높은 수준의 공예 기술을 나타내는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바탕으로 선비의 절제와 지조를 강조한 미술 문화가 발달하면서 장식적인 면보다 소반·반닫이 등 생활 속 목공예품이 발달했다.

장용호 명장은 “어린 시절 팔만대장경의 주재료 나무가 자작나무라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 경북대 임학과 박상진 교수가 수종을 분석하니 70% 가까이 산벚나무라고 밝혀진 바 있다”며 “산벚나무를 써보면 조직이 조밀해서 서로 꽉 물고 있는 성질이 있어 아주 가는 글을 새겨도 안 떨어지고 붙어있다”고 설명했다.

장용호 명장이 산벚나무에 새긴 반야심경. /학고방
장용호 명장이 산벚나무에 새긴 반야심경. /학고방

서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장명호 명장은 나무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글을 새기는 방식과 크기 등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한글이냐 한문이냐, 현판의 큰 글씨냐 반야심경을 옮겨 새길 작은 글씨냐 등에 따라 다르고, 음각·양각·투각 등 파내는 방식도 여럿이다.

◇통영 통제영 복원 참여 잊을 수 없어 = 1963년 거창에서 태어난 장 명장은 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결혼 이후 1990년대 중반 김해에 터를 잡았다.

2014년 김해공예협회 회장을 지내고 있던 장 명장은 통영 통제영 건물 복원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통공예분과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통제영 중심 건물인 세병관을 훼손하고 부속건물들을 모두 철거하다시피 했는데 세병관은 보수를 거쳤고 2002년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2000~2013년 사라진 통제영 객사와 주요 관아 등 부속건물 30여 동을 복원하는 작업을 통영시가 했고, 글씨는 국전 서예 부문 수상자들이 썼고 저는 국가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으로 서각 작업을 맡아서 했습니다.”

장용호 명장이 현판 작업을 한 국보 제305호 통영세병관 부속 건물 백화당. /학고방
장용호 명장이 현판 작업을 한 국보 제305호 통영세병관 부속 건물 백화당. /학고방

현판 28개·주련 16개·벽시 2개 서각 작업을 도맡아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가 서각 작업을 한 부속건물은 12 공방·산성청·운주당·중영·주전소 등이다. 산성청은 통제영 입구 관문 영역으로 세병관을 바라보며 진입하는 곳이다. 통제영 복원 작업 외에도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다.

“2015년 산청호국원 현충문 현판을 만들던 순간도 생생합니다. 현판은 가로 330㎝·세로 107㎝로 단풍나무를 썼는데 2개월 넘게 작업했었습니다. 호국영령들을 위해 세워지는 호국원 현판을 새기면서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습니다.”

◇초지일관 자세로 나무를 대하며 = 장 명장은 나무가 주는 따뜻한 기운 때문에 오랜 벗으로 삼을 수 있었다. 나무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기에 더욱더 귀하다.

“목리. 나무의 결 또는 문양을 일컫는데 이는 나무마다 다르고 부위마다 또 다릅니다. 횡단면에 나타나는 나이테를 비롯해 구성 세포의 배열 상태에 따라 각양각색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결이 아주 화려한 용목을 발견하면 더없이 기쁩니다. 나무가 참 좋았습니다. 흙을 만지는 도예인, 금속을 다루는 금속공예인 각자가 아끼는 물성이 있겠지만 저는 나무가 주는 따뜻한 기운에 매료되어 지금껏 가까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용호 목칠공예 명장이 1986년 처음 나무에 새긴 '초지일관'을 들고 있다. /박정연 기자
장용호 목칠공예 명장이 1986년 처음 나무에 새긴 '초지일관'을 들고 있다. /박정연 기자

그의 나이테는 켜켜이 쌓였다. 2011년 제41회 경남공예품대전 대상을 비롯해 2017년 제21회 대한민국 통일미술대전 서각 부문 대상, 2021년 제25회 통일문화제 통일대상 대통령상 수상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022년 김해시 최고 명장 - 목칠공예 분야’에 이름 올린 장용호 명장은 전통 옻칠 제작 기술과 전통 각자 기술 등을 접목해 김해 공예산업 분야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았다.

“기쁜 마음이 앞설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책임감도 무겁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습니다. 제 마음의 현판인 ‘초지일관’ 자세로 전통을 살리고 지켜나가는 일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나무처럼 따뜻한 기운을 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박정연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