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하게 만드는 지식 습득에 그쳤나
국민 섬기는 지혜로운 지도자 보고파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사람다워지고, 모든 사람에게 득이 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텐데 그렇지 않다면 헛공부를 한 것이고,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것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옛날부터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이 되어 공부 잘하면 출세하고, 공부 못하면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를 못해도 돈을 많이 벌어서 출세한 사람들도 있지만,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대체로 공부한 사람이다 보니 공부가 성공의 척도라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위 공부한 사람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로 정치를 하고, 기업을 하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만날 싸우기만 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합니까? 그동안 배워온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전부이었다고 한다면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지도자라면 과외를 해서라도 사람다움에 관한 공부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출세를 포기하고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제껏 목사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아는 것은 공부가 출세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와 너와 하늘을 아는 공부이기는 하지만 이 두 공부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고, 이 둘 사이에 긴장이 살아 있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갈망하는 지도자도 이런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 지금까지도 우리의 공부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지식 습득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공부는 나와 너와 하늘과 땅을 꿰뚫는 신령한 지식, 지혜를 깨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지혜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지혜는 '하늘'이 아니라 '땅바닥과 가까운 곳'에 있고, 내가 작아질수록 커지고, 나를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이고,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신비인데 나를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지도자의 꽃입니다.

12월은 교회력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인데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그가 신의 영광을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기(빌 2:1-11) 때문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사람들이 벼보다 못해서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이 나라에 지배만 있고, 섬김이 없어서야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고,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쪽팔려서 뉴스를 볼 수 없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제발 지도자들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잎을 떨어뜨리고 맨몸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 앞에서 심기일전(心機一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명탁 하나교회 목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