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진통 중인 '노란봉투법'
사용자 손배소 지원하려는 정부

1년 동안 쓰는 다이어리의 맨 뒷장에는 늘 봉투 하나가 들어 있다. 어느 해 문득 세뱃돈을 받아들다 말고 '내 나이가 몇인데 엄마는 늘 세뱃돈을 주지?' 자각한 이후부터 넣어두기 시작했다.

든든한 외투를 두른 듯한 그 느낌을 간직하려 언제나 세뱃돈 봉투 그대로 마지막 갈피에 끼워두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이 때로 버겁게 느껴질 때 몇 번이고 들여다보려고.

올해 받은 돈 가운데 어떤 원고료는 1년짜리 예금으로 들어두기도 했다. '이 정도 금액을 무슨 예금까지…' 싶을 정도로 금액은 많지 않지만 내게는 어떤 도전과 연결된 돈이라 의미가 크다. 조금 있으면 만기인데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맨 처음 '노란봉투' 안에 있었을 돈을 떠올려 본다. 2013년 <시사인>에 도착한 편지에는 4만 7000원의 현금이 함께 들어 있었고, 그 돈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 기사를 보고 한 주부가 보낸 돈이었다.

기사는 이렇게 전했다. '2013년 11월 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쌍용차와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노조에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읽고 남편을 떠올렸다. 47억 원, 평생 새벽 2시에 퇴근해서 아침 6시에 나가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큰아이 태권도 학원비를 아껴 보냈다는 4만 7000원은 노조의 쟁의행위를 보장하자는 취지의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9년이 흐른 지금, '노란봉투법'으로 통칭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19대, 20대 국회 임기 만료를 거쳐 여전히 국회에서 진통 중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에서는 지금까지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액이 316,028,657,053원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백만 원대부터 역산하여 헤아려야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마저도 '소송기록이 확보된 197건의 손배가압류 사건만' 더한 숫자라고 했다.

숫자를 좀 더 가까이 가져와 보자. 피고 기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200억 원, 문화방송본부 195억 원, 전국철도노동조합 162억 원…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다.

이 와중에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지원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화주도 아니면서, 운송을 거부하는 화물차주에 대해 유가보조금 1년 치를 끊고,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도 1년간 제외하겠다는 직접적인 엄포도 놓았다. 유가보조금은 4t 트럭 경유를 기준으로 한 대 70만~80만 원쯤 된다고 한다. 치졸하다.

먼발치에서지만, 노조가 없던 회사에서 노조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적 있다. 초기 집행부 몇몇을 빼놓고 직원 대부분은 노조 가입 권유에 '그럼 다달이 노조 회비가 얼마 빠져나가는 거냐'를 물었다고 들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권리보다 급여명세서에 찍힌 마이너스가 실감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으로 회비를 내고 있지만, 노조 살림이 어려워 시작한 '자발적 조합비 인상 캠페인' 앞에서 계속 망설였으니까. 아주 최소한의 회비를 내고 있을 뿐이지만 때로는 그 알량한 회비마저 없다면 유니온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가진 것을 내놓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누구보다 '사용자'라 불리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부디 용기를 내길 바란다.

/임승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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