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책임지는 사람 아무도 없어
청년 열정 바칠 수 있는 희망 사회 되길

아침을 엽니다. 하도 끔찍한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어서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건강한 청년들 이야기보다 끔찍한 일을 겪는 청년들이 많은 탓인지 연일 청년들과 관련한 나쁜 소식들만 들립니다. 그저께는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10.29 참사로 목숨을 잃은 청년 155명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니 이 땅에서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 자식을 잃은 듯한 슬픔에 빠집니다. 한 명 한 명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로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지 모르는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곱고 건강한 청춘 남녀를 데려갔는데도 그들의 죽음을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국민 안전을 담당해야 할 국가가 안전을 소홀히 한 책임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청년은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들이 한평생을 살아간다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낼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생때같이 잃어버렸습니다. 그 청년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10.29 참사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의 수십 배를 곱한 숫자보다도 많은 사람이 그 청년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살아 있는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10.29 참사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보면 슬픔이 앞을 가립니다. 그들의 슬픔만큼이나 이 땅의 청년들은 모두 아픈 청춘들입니다.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던 한전의 청년 직원이 바깥에서 공사를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지하철 하청 공사를 하던 비정규직 청년 직원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이 슬프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청년들의 죽음은 더욱 슬퍼서 애간장을 타게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청년들의 죽음 때문에 매일 애문(哀文)을 써야 할 지경입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일이 서투르고 경험이 부족하기 에 그들을 보호하고 아껴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할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시급을 다투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청년들이 원하는 일을 열정을 다해서 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의 관심과 열정에 관계없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요. 젊은이들이 그들의 막힌 열정을 풀어내고자 이태원에 모여들고, 축제 현장에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요.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은 몹시 아픕니다. 아프다 못해 질식하고 있습니다. 그들 고통을 알아주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사회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 사회는 이태원에 모여든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정과 '지스타 2022'에 모여드는 청년들의 용광로 같은 열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일까요.

오늘도 이 땅의 어딘가에 죽어가는 청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죽어가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가 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 땅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슬픔의 글을 올립니다. 아침을 열며 이 땅의 청년들이 열정을 고스란히 바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황선열 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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