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라 생각하며
3년간 지면을 빌려 이어온 글 이제 마무리합니다

'요산 김정한 문학 속 양산을 걷다'로 시작해서 '문학 속 경남을 읽다'까지 3년을 썼다. 연재 첫해에는 써 뒀던 글이 있었다. 신문 지면에 맞춰 새로 다듬어 보내는 것이었는데도, 연재는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꼴로 보내는 원고인데 한 달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원고 하나에 한 달을 그랬으니 연재하는 1년 내내 안절부절못한 셈이다. 매일매일 기사를 써내는 기자들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작가들 머리가 허옇게 세는 까닭을 몸으로 이해했다. 할 짓이 아니구나. 

다음 해에 신문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문학으로 보는 지역의 이야기를 경남으로 넓혀서 써 보지 않겠냐고. 글을 계속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이었다. 할 짓이 아닌 걸 분명 온몸으로 알았는데, 덜컥 그러겠다고 승낙해 버렸다. 저질러진 일이 항상 작심한 일은 아니다. 

'문학 속 경남을 읽다'는 그렇게 해서 2년을 쓰게 됐다. 첫해와 달리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에멜무지로 시작한 연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고료를 받으며 글을 쓴다고 하면 대략 있어 보이지 않나. 돈이 얼마가 되었든 말이다. 아마 그런 허영과 허세도 내 마음 안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영세'만으로 감당하기에는 글쓰기의 세금은 가혹한 바가 있다. 망설였다. 그때 벗들이 부채질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이 된다, 하고 싶었던 일이고 어차피 할 일이었는데 차비 받으며 한다고 생각해라 등등. 부채질하는 사람은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조카의 결혼과 취업을 걱정하는 삼촌 같다고나 할까. 당사자가 아니니 가볍게 하는 부채질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가벼운 부채질에 흔들렸던 것은 오롯이 내 탓이다. 문학 작품에 나타난 지역의 이야기를 쓰면서 흥미로웠다. 문학을 통해 탐색해 보는 지역의 이야기, 문학과 지역의 역사를 얽어 그곳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것에 재미를 들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국어과 교사이기도 했다. 학생들과 오랫동안 학교 밖 교육 활동으로 문학 답사를 다녔다. 문학 답사가 문학 교육의 유효한 교수-학습의 하나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하고 있다. 문학 답사를 오래 했지만 아쉬움이 많았다. 주로 답사를 다니는 것에 치중했고 문학과 지역을 얽어 삶을 읽는 데는 대체로 무지했다. 문학 작품을 혼자 읽거나 학생들과 함께 읽는 것은 마음을 좀 기울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역의 이야기를 알고 문학과 얽어 읽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문학 작품과 지역의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 읽으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한다.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 읽는 것을 '두껍게 읽기'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두껍게 읽기 문학 답사를 위한 교재 연구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할 짓이 아니라면서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또 하나의 중요한 까닭이었다. 
 

◇<수라도>와 낙동강 갈밭 = 소설 <수라도>의 공간적 배경은 '낙동강 연안의 그 질펀한 갈밭들'이다. 그 갈밭이 '모조리 동척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이내 그들의 논밭'이 되었다고 소설은 적고 있다. 

1987년에 낙동강에 하구언이 만들어졌으니 <수라도> 속의 낙동강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매일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였고, 강은 수시로 갈밭으로 넘쳤다. 사람들은 그 갈밭을 메기가 비 냄새만 맡아도 홍수가 진다하여 메깃들이라 불렀다. 

메깃들에서 농민의 삶은 가난했지만 세금을 면제해 주는 배려를 받았다. 메깃들이 동척의 논밭이 되면서 물금평야가 된다. 동척의 논밭이 된 물금평야는 가혹하기만 했다. 가혹함에 맞서 농민들이 농민조합을 만들었으나, 농민은 구속되고 죽고, 조직은 산산히 깨졌다. 저항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수탈이 본격화되었다. 

'몰강스러운 식량 공출'은 '사람 공출'로 이어졌다. '오봉산 발치 열두 부락의 가난한 집 처녀 총각과 젊은 사내들이 짐덩이처럼 떼를 지어 짐배에 실렸다.' 피붙이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는 '보르네오댁'이었고 '뉴기니야댁'이었다. '남자들이 징용 간 곳에 따라 보르네오댁이니 뉴기니야댁이니 하는 새로운 택호들이 유행'했다고 소설은 이곳의 사정을 적고 있다.
 

◇백석 시 <통영> = 백석은 그의 시 <통영>에서 그의 연인을 찾아가는 통영을 '갓갓기도 하다'라고 적었다. 혹자는 통영이 '갓'으로 유명했으니 이를 빌어 비유로 '갓같다'라고 한 듯하다고 했다. 글쎄, 썩 동의하기 어렵다. '갱상도 원어민'의 말을 들어 보면 '가깝기도 하다'라고 말한 것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갱상도 원어민인 내게는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서울에서 통영이 가까울 리가 없다. 먼 길을 가깝다고 말한 까닭은 연인에게 먼 길 온 것을 생색내려는 것이다. 

<통영>은 어쨌든 연시(戀詩)이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오는 길은 멀기도 하고 번거로운 길이기도 했다. 아마도 백석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에서 내려 마산행 기차를 갈아탔을 것이다. 마산까지 오는 길만도 하루가 걸리는 거리였으니 마산에서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마산항에서 통영까지 다시 반나절 뱃길이었다. 못돼도 이틀은 걸려 닿은 통영은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삶의 문학 = 문학 앞에 찰지게 붙는 수식어는 '삶'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 성취 기준도 이렇게 적고 있다. 

'문학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정서적·미적으로 삶을 고양함을 이해한다.' 

'삶의 문학'을 읽으려면 먼저 당시 사람들에게로 바투 다가앉아야 한다. 문학은 역사와 달라서 인과(因果)나 선후(先後)를 따지거나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의 삶과 마음을 형상화한다. 역사가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서술한다면, 문학은 망탈리테를 줄기로 하여 형상화한다. 망탈리테는 의식하지 않고 실현되는 개인이나 집단의 태도, 개념, 규범 등을 일컫는 말이다. 문학 작품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망탈리테를 읽는 것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작이 되리라 생각했다.

소설 <수라도>에서 양산에 사는 여성들은 자신의 귀속 상징인 택호를 '보르네오댁'이니 '뉴기니야댁'이니로 고쳐 부른다. 이들의 망탈리테를 지역의 이야기와 얽어 읽으면 택호를 고쳐 부를 수밖에 없었던 간절함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시 <통영>에는 연인을 찾아 먼 길 오고서 '갓갓기도 하다'며 생색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있다. 생색내야 할 만큼 시인의 사랑은 불안했고 그래서 더욱 설렜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뵈는 것들에 설레는 시인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롭다. 
 

◇두껍게 읽고 싶었다 = 진해 용원에서 충무동으로 답사하며 쓴 글은 역사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쓰여서 아쉬웠다. 진영에서 읽은 강성갑 목사 이야기는 그의 삶이 주는 울림에 먹먹했고 조심스러웠다.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되는 합천 이야기는 합천 민중의 삶이면서 우리 역사이기도 했다. 시인 박재삼 문학 답사는 삼천포 소년 성장기를 들여다보는 듯싶었다. 밀양, 함양, 거제, 하동, 남해 등 경남 곳곳과 그곳의 삶을 문학 작품과 얽어 이야기를 층층이 쌓아 두껍게 읽고 싶었다. 어떤 두껍게 읽기는 만족스럽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부족해서 부끄러웠다. 지역을 정했으나 그곳을 형상화한 적절한 문학 작품을 찾지 못해 애먹기도 했고, 문학 작품을 골라 읽었으나 작품에 나온 지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헤매기도 했다. 전자든 후자든 두껍게 읽기에는 부족하기는 한가지였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마감 날짜는 닥쳤다. 어쨌든 원고는 보내야 하니 부족한 줄 알면서도 보내기 버튼을 매번 눌렀다. 

지면을 채우는 글이 늘어나는데 부족함은 더해졌다. 부족함은 일찌감치 알았음에도 멈추지를 못했다. 바닥을 보고서야 이제야 멈춘다. 멈춘다고 이렇게 지면을 빌어 썼으니 당분간은 어떤 부채질에도 흔들리지 않겠지. 3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제일 먼저 자리한 마음은 고마움이다. 부채질해 준 벗들이 고맙고, 졸고를 격려해 준 기자들이 고맙고, 무엇보다 읽어준 이들이 고맙다. 그리고 이 원고를 보내면 당분간은 홀가분할 듯싶다.
/이헌수 시민기자(메깃들마을학교 운영위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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