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귀국 독창회 때 남성 코러스 꾸린 게 계기
남성중창단 인기 힘입어 4년 뒤 여성중창단 창립
경남작곡가협회서 창작곡 모델 삼을 정도로 인기
노래, 무용, 동화구연, 연극 등 여려서부터 끼 발휘

지난 11일 밤 마산 3.15해양누리공원 중앙무대에서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한 ‘뮤직 인 창원’ 첫날 공연 마지막 무대를 경남프리모앙상블이 장식했다. 남성중창단의 중후한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한 무대였다. 이 팀의 프로필을 보니 팀을 이끄는 음악감독이 여성이다. 여성이 남성 합창단을 지휘하는 사례야 많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어떤 분위기일지 또 경남프리모앙상블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궁금증이 솟구쳤다.

섭외하는 과정에서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달 15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공연한 경남오페라단의 단장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선 뭔가 예술가로서 큰 내공이 있는 사람이겠거니 짐작했다. 경남오페라단 단장이자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인 조미숙(59) 씨를 만난 것은 지난 23일 그의 제자가 운영한다는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개인 스튜디오에서였다.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호칭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 자격으로 제가 인터뷰하는 거라 ‘음악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으나 경남오페라단 단장을 맡고 계신데다 다들 ‘단장님’으로 통하니 저도 ‘단장’이라는 호칭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예, 그러셔도 됩니다.”

-단장님, 경남프리모앙상블이 어떻게 결성된 건가요.

“1998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대개 외국에서 성악 공부한 사람들 돌아오면 귀국독창회를 하잖아요.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 과정에서 혼자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게 밋밋해서 남성 코러스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남성 성악가 8명을 구성해 무대 뒤쪽 위 계단에 세웠어요. 당시엔 공연장이 딱히 없어서 마산종합운동장에 있는 올림픽생활관에서 했는데 뒤쪽 계단은 조명이 비치지 않으니 안 보였어요. 그런데 남성 목소리의 코러스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이 신기하다, 생각했던 거예요. 공연이 끝나고 연미복을 입은 남성 성악가들이 나와 인사를 하자 객석엔 그야말로 환호성이었죠.”

경남프리모앙상블이 지난 11일 마산 3.15해양누리공원에서 펼쳐진 '뮤직 인 창원' 첫날 공연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경남프리모앙상블이 지난 11일 마산 3.15해양누리공원에서 펼쳐진 '뮤직 인 창원' 첫날 공연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주인공은 조미숙인데 남성중창단에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니 기분도 묘했겠다. 어쨌든 조미숙 귀국독창회를 위해 임시로 구성된 중창단이므로 그것으로 이 남성 중창단의 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주변에서 이 남성 중창단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코러스로 참여했던 성악가들도 그걸 원했고, 그래서 ‘경남프리모앙상블’이 만들어졌다.

“경남프리모앙상블을 이끌고 4년 정도 활동했을 때였어요. 이 남성중창단의 공연을 봐왔던 여성 성악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제게 와서 여성중창단도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2002년 10월 1일에 창단한 ‘경남프리마앙상블’입니다.”

경남프리모앙상블 공연에서 거의 빠짐 없이 경남프리마앙상블의 협연을 본 기억이 있고 반대로 프리마의 공연에 프리모가 협연한 것을 봤던 터라 두 음악 단체가 남매지간인가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두 단체는 엄연히 독립된 운영체다.

“프리마도 제가 20년 째 하고 있어요. 혼성으로 급하게 코러스가 필요할 때면 프리모+프리마한테 연락이 오는 편입니다. 2011년 12월 1일 경남작곡가협회에서 창작합창곡을 발표할 때 프리모와 프리마를 모델로 창작곡을 만들어서 같이 발표하자는 제의를 받고 협업한 적도 있습니다. 경남 음악가들 사이에선 이 두 단체의 인지도는 높은 편입니다.”

경남프리모앙상블의 24주년이자 22회 정기공연이었던 9월 18일 공연 때 팸플릿을 통해 소개한 조미숙 음악감독의 프로필./팸플릿 갈무리
경남프리모앙상블의 24주년이자 22회 정기공연이었던 9월 18일 공연 때 팸플릿을 통해 소개한 조미숙 음악감독의 프로필./팸플릿 갈무리

경남프리모앙상블과 경남프리마앙상블에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가 각 1명씩 있다. 프리모 역사 24년, 프리마 20년. 짧지 않은 기간이다. 단원들의 활동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평균적으로 6년 쯤 되는 것 같네요. 적게는 1년 정도 있다가 나가는 경우가 있긴 한데 이사를 간다든지 특수한 상황일 때 그렇고 대체로 꾸준히 활동하는 편입니다. 이런 활동, 음악과 무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면서도 여성중창단의 경우 결혼, 출산 등 계속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가 많아 남성중창단보다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다고 덧붙인다.

4년 전 경남프리모앙상블이 20주년일 때 20여 명의 ‘OB(옛 단원들)’가 모여 무대에서 함께 했던 것처럼 올해 경남프리마앙상블도 20주년을 맞아 ‘OB’들이 참여해 함께 했다고.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경남프리모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예술가로서 조 단장의 개인사를 훑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어린 시절의 조미숙을 물었다.

“옛날에는 비둘기호 기차 의자가 초록색이었잖아요. 거기서 제가 기차 한 칸을 왔다 갔다 휘저으면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나 봐요. 초등학교 때엔 합창단 활동뿐만 아니라 무용도 하고 동화구연도 하고, 연극도 했어요. 당시 마산여고 아래쪽에 KBS마산방송국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요를 불렀던 기억도 나요. 중학교 때엔 우연히 친구 따라 교회에 갔는데, 그곳이 창동 평안안과 옆 중앙감리교회라고 음악 전문 교회였어요. 그곳에서 유명한 음악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땐 음악을 전공하려고 본격적인 교습을 받았어요.”

창원대에서 음악 전공을 했고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해 음악에 더 깊이 들어갔다. 창신대와 예고 등에서 출강하다 그것도 모자라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선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로부터 섭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할 수도 있었지만, 어린 자녀들 때문에 귀국을 선택했다. 그게 1998년이었다.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조미숙 경남프리모앙상블 음악감독이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제자의 스튜디오에서 남성 중창단 형성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정현수 기자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성대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오페라 무대를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됐다. 물론 성악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했다. 내년 환갑 때엔 목이 좋지 않아도 마지막이 될지 모를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그땐 프리모와 프리마가 함께하는 무대를 꿈꿔 본다.

언제나 그의 고민은 멋진 무대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길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재미나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될까.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경남오페라단 단장으로서의 활약과 경남프리모앙상블과 경남프리마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서 역할을 기대한다.

조 단장은 인터뷰 말미에 한마디 덧붙였다. “오페라든 앙상블 무대든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은 또 보러 오시던데 한 번이라도 와서 보는 게 중요합니다. 문화라는 것이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즐기게 되니까요.”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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