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 갖춰야 객관화 시각 생겨
역사도 주체적 관점부터 키워야

2022년 연말을 맞아 필자가 바둑의 고수가 되는 비기를 하나 공개하겠다. 바둑 마니아라면 바둑을 두다 어느 때, 이마에 내천 자(川)를 그리며 집중에 집중을 더하다 보면 미간 사이에 눈이 하나 더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바둑의 '제3의 눈'으로 부른다. 이 제3의 눈은 보통의 눈이 아닌 초월적인 감각과 인지력을 지닌 눈을 의미한다. 이 자리는 한의학 용어에서 인당혈이며 요가의 나라 인도에서는 제6 차크라로 스와디스타나라고 한다.

바둑에서 이 제3의 눈을 뜨면 객관의 시각이 생기는데 이때부터 승부보다 바둑을 두는 자체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1인칭 나의 입장, 2인칭 상대의 입장, 그것을 지켜보는 3인칭 관전자의 입장이 모두 하나가 되는 현묘한 현상을 겪을 수 있다. 몇 수 놓아보지 않아도 승패는 이미 정해졌고 그저 바둑돌을 놓아 결과를 확인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래전, 어느 프로기사의 대국에서 나왔던 장면이다. 한 수 한 수 대국에 몰두하다 한 선수가 슬그머니 일어나 상대 뒤에 가서 섰다. 상대는 심혈을 기울여 최선의 한 수를 찾고 있는데 상대 관점에서 바둑의 형세를 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것은 대국예절에서 상당히 무례한 것이었고 당시 바둑계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불쾌해진 상대 선수는 그 선수에게 따갑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자네는 밥도 거꾸로 먹는가?"

이후 대국 중에 그러한 행동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 일은 월간지에 소개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바둑의 승패로 대국료를 받는 프로기사에게 한 판의 바둑은 생계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 프로기사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행동은 프로 세계에서 용납할 수 있다는 의견과 바둑은 예로부터 예도(禮道)이니 이러한 행동은 넘겨버릴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필자가 자주 가던 기원의 어느 노고수(老高手)가 이 월간지 내용을 읽더니 담배연기를 신선처럼 내뿜으며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눈이 안 뜨여서 그런 거야. 아직 술법에 얽매여 있으니 하수지, 하수고 말고." 그 당시는 귓등으로 들었지만 십수 년이 지난 어느 순간, 노고수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고수의 필요조건은 승수가 아닌 그 너머의 무엇이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 문제와 아울러 올해 2023학년도 수능 한국사 문제도 한번 되짚어볼까 한다. 우선 우리 역사를 '한국사'라는 3인칭 관점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도 문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역사와 언어를 배우고 시험을 치른다면 한국어, 한국사 능력시험 등으로 불릴 수는 있겠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국어·국사로 배워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게다가 수능 한국사 문제 중 일부는 1인칭이 아닌 3인칭 관점으로 서술돼 있어 수능을 치른 수험생도 알게 모르게 곤욕을 치렀을 것이라 짐작된다. 홀수형 17번은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문제이다. 피해당한 나라 입장이 아닌 피해를 준 나라 입장으로 지문이 나오고 이것을 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현명한 수험생들은 문제를 맞혔다는 기쁨은 잠시이고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하면 긍지와 자부심은커녕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제3의 눈은 고수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제3의 눈을 가지려면 먼저 제1, 제2의 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체적인 사관 없이 3인칭 관찰자의 입장으로 역사를 배우면 세계화의 흐름에 맞는 인재가 양성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당혈을 손끝으로 꾹 누르며 바둑과 우리 역사를 들여다본다.

/조용성 경남바둑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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