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이어지던 코로나에서 조금은 벗어난 상황이라 어린이들의 학교생활이 자유로워졌나 봅니다. 정성 들여 써 보낸 어린이들의 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작은 단위 활동과 모임이 많아졌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모와 고모를 비롯하여 가까운 사람들과 나눈 시간을 눈에 보이듯이 그려낸 어린이 글이 많았습니다.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고 생각을 길게 하고 쓴 글을 읽으면 무엇보다 든든합니다. 어린이 마음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어 따뜻하고 즐겁습니다.

늘 그랬듯이 교과서나 어른이 쓴 글을 흉내 내거나 어른 손길이 많이 개입된 듯한 글보다 서툴더라도 어린이 생활이 진솔하게 드러난 글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 관념적으로 꾸며 쓴 글보다 글감의 대상과 상황, 둘레 사정을 자세히 밝혀 쓴 글, 우리말을 잘 살려 쓴 글을 뽑으려고 하였습니다. 글의 장르에 상관없이 자기 삶과 생각, 마음이 거짓 없이 잘 전해지는 글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의 참뜻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닿아있다는 것을 늘 확인하고 그렇게 어린이 글을 봅니다.

낮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강현민 어린이의 글 '할아버지의 농장'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할아버지 농장 일과 할아버지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도 힘이 세어 농사를 많이 지으시는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그냥 관조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할아버지 일에 대해 여쭙기도 하고, 눈이 부신 할아버지를 위해 손지붕도 만들어 드리는 마음 따뜻한 어린이입니다. 틈틈이 물장난도, 불멍도 하게 해주는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까지 자세하게 밝혀 쓰니, 농장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와 어린이의 관계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버금으로 뽑은 이예빈 어린이의 '가방아 어디 있니?'는 비 오는 날 그네에 두고 온 가방을 "할머니들이 지붕 있는 데 가져다 놓으셨다"는 말을 담담하게 썼지만, 오히려 그래서 어린이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2학년 이정모 어린이의 시 '아빠'는 교통사고로 멀리 떠난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불러도 대답 안 해/ 내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나?"라고 하는 안타까움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밝혀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입니다. 전서은 어린이의 줄글 '내가 어른이 된다면?'에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어린이의 꿈이 자세히 잘 드러나 있습니다. 편집에 관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수익이 생긴다는 것을 보고 수익 때문에 유튜브를 찍을까 걱정도 하는군요. 그러나 배려하는 크리에이터가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면서 수익도 얻을 수 있는 알찬 유튜브를 찍고 싶어 하는 당찬 마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높은 학년 으뜸으로 뽑은 김민성 어린이의 시 '일'을 읽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할머니와 아빠의 무심한 듯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밥 먹는 게 일"이라고 하시는 할머니께 "일하세요"라고 하는 아빠의 말은 서로 간의 믿음과 애정이 있을 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사실을 이 어린이는 아는 것이지요. "밭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게 밥을 먹는 거라" 하시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어린이 마음은 그래서 더 따뜻하고 정답습니다. 

버금으로 뽑은 조인성 어린이의 줄글 '엄마의 결혼반지를 찾아라'는 6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쓴 글입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자신의 실수로 엄마 반지를 잃어버린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어린이입니다. "엄마에게 더욱더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전하고 이제는 가슴 졸인 그 마음을 덜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김시환 어린이의 줄글 '아낌없이 주는 이모'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에게 모든 것을 해주는 이모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짠한' 이모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쩌는 이모'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말로 간단히 끝을 맺고 있지만, 이모가 본인에게 베푸는 일을 자세히 드러내 주는 앞의 글에서 충분히 그 마음을 전했다고 봅니다. '낭만 교장선생님'을 쓴 김태은 어린이는 학교생활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월요일은 시 수업'이라고 머릿속에 꼭꼭 박아"놓고 영원한 낭만 교장선생님을 기다리는 이 어린이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올여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청년의 말이 떠오릅니다. 올해가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고, 내년은 '어린이 해방선언'을 발표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3년에 발표한 '어린이 해방선언'은 '보호'가 주된 내용인 1924년 국제연맹의 '어린이 권리선언'과는 다르게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보호' 역시 구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어린이를 한층 더 완전한 인격체로 예우한 것입니다. 올해도 2000편에 가까운 어린이 글을 읽으며, 어린이는 어린이로 그대로 봐주어서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믿어줘도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했습니다.

/박종순(아동문학평론가) 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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