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 5명이 전·현직 국회의원 6명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차별 구제 소송을 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기자회견과 논평에서 외눈박이 대통령, 절름발이 정책, 정신 분열적 정부 집단적 조현병, 꿀 먹은 벙어리 등 장애인 비하 표현을 사용한 정치인들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구액은 각 100만 원씩이었다. 박 의장에게는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1년 후 결과가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는 정치인 발언이 장애인 혐오 표현이 맞는다고 봤다. 또 장애인들이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명예훼손과 모욕이 성립되려면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는데 장애인이나 원고를 향한 발언이 아니었다는 게 이유였다.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저서 〈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인물과사상사 펴냄.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저서 〈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인물과사상사 펴냄.

#가수 싸이는 2011년 ‘흠뻑쇼’를 처음 열었다. 관중석에 물을 뿌리는 형식의 공연이다. 싸이의 대표적인 여름 콘서트로, 공연장에 갔다 하면 몸이 흠뻑 젖는다고 해서 흠뻑쇼라는 이름이 붙었다. 공연 한 회에 식수 수백 톤이 쓰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싸이가 MBC 예능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공연 회당 300톤의 물을 쓴다”라고 말한 이후 과도한 물 사용 비판과 함께 환경을 생각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최악의 봄 가뭄으로 농민들은 모내기를 시작도 하지 못하거나, 마실 물 부족을 겪기도 했는데 그러던 6월 12일 배우 이엘이 자신의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그는 “(싸이의) 워터밤 콘서트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엘이 글을 게재한 시점은 소양강 상류가 바닥을 드러낸 때였다.

찬반 논쟁이 불거졌다. 이틀 후인 14일 작가 이선옥은 자신의 SNS에 ‘이엘 사태로 보는 PC주의 운동의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앞선 게시글을 반박했다. 이선옥은 이엘의 행동을 두고서 가뭄에 물을 뿌리며 공연하는 타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정의로운 나를 과시하는 것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또 이엘이 가뭄이라는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는 실천은 소셜 미디어에 한마디 쓰기가 전부라고 비꼬았다.

앞서 소개한 두 사례는 모두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과 맥이 닿아있다. PC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 언어 사용이나, 그러한 활동을 하지 말자는 사회 운동 또는 철학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핵심은 도덕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PC 운동은 문화 전쟁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문화 전쟁은 국내에도 상륙해 우리 일상 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상태다.

PC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논란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뜨거워질 공산이 크다.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이 위험하듯 자기과시를 위한 PC도 위험할 수밖에 없기에 이 같은 사안은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전개돼온 PC 논쟁은 이념적 차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 전쟁 양상을 띠기도 해서 그간 해결이나 타협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보수주의자 사이에서는 전통이나 관습에 적대적 태도를 보인 PC를 싫어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나, 이를 두고서는 생각해볼 지점이 적지 않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저서 <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에서 “도덕과 정의는 얼른 듣기엔 아름답지만, 그게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과장되면 끝없는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만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하다”라고 설명했다. 인물과사상사 펴냄. 200쪽. 1만 4000원.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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