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퇴직 전 12월 초 예고된 철도 파업
구조조정·민영화 저지 마지막까지 함께

까까머리 학생 시절, 평소 농땡이만 치다 시험날 다가오면 학교에 불이라도 나서 시험이 취소되길 바란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지난 세월은 그랬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일들은 한 번도 비켜가거나 미뤄짐조차 없었다.

문득 돌아보니 연초에는 아득하던 연말이 저승사자처럼 부지불식간 코앞에 닥쳐있다. 12월 말이면 내가 철도기관사란 천직을 마감하게끔 되어 있어서 더더욱 연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피하고 싶은 세월은 쏘아놓은 살처럼 더 빨리 흘렀다. 어쩔거나? 특별히 퇴직휴가가 없는 직장이어서 12월 한 달은 떠남을 핑계로 비번날마다 여기저기 바쁘게 술자리를 떠돌아야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럽쇼? 철도노조에서 12월 초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란다. 자칫 11월에 오르는 기관차운전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한 번의 근무마저 애틋할 지경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기관차운전실을 사랑했다. 역마살이 끼었을까? 출근만 하면 산 넘고 강 건너 내달리는 철도기관사 근무가 아주 좋았다. 낙동강에서부터 전라도까지 오래된 경전선 선로는 나에게 꿈속의 은하철도였다. 그 와중에 90년대 말부터 철도노조 민주화와 민영화 저지를 위해 하동역까지 경전선 자갈밭을 쫓아다니던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을 펄떡이게 하고 있는데, 나는 이제 두 갈래 철길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마지막 떠나는 길에 또 파업이라니…. 그것도 철도기관사로 살아가는 내내 단 한순간도 떨쳐내지 못한 구조조정, 인원감축, 민영화라는 파도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니….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어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퇴직자들이 짊어졌던 어깨 위의 짐은 그대로여서 다시 후배들의 등짐으로 고스란히 물려줘야 할 처지이니 세상은 과연 나아진 것일까?

언론에서 화물연대, 지하철, 철도 파업으로 연말 물류대란이 우려된다고 떠들썩하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연장을 위해 다시 화물차를 세운다. 도로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요구를 정권은 화주들의 부담만 거론하며 무대책으로 외면했다. 철도는 올해만 벌써 4명째 순직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태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무런 근거 없이 "두 시간 반 일하고 이틀을 쉰다, 자동화설비를 노조가 반대해 설치하지 못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해괴한 주장을 펴며 노조와 현장의 책임으로 몰고 갔다. 이태원도 그랬지만 참사를 대하는 정권 태도는 일관된다. 오로지 현장 잘못일 뿐이란다. 왜 이들은 불난 집 부채질에 여념이 없을까?

역대로 보수정권이 지지율을 올리는 처방으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꺼내 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북한 탓이다. 돈 줄 테니 총 쏴달라고까지 한 사람들이니…. 두 번째는 민주노총 타령, 파업유도했다고 자랑까지 한 검사가 있었다. 세 번째는 전교조 때리기이다. 여기에 야당 수사로 공안몰이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이다.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의도가 빤히 보이는 정권의 대응 탓에 아마도 나는 파업기간 중 퇴직을 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리된다면 한 푼이라도 아쉬운 퇴임자의 입장에서 다소 손해야 보겠지만 외려 영광일 터. 마지막까지 함께 짐을 나눠지고 있었다는 변명이나마 챙겨 덜 미안할 테니 말이다. 또 지금껏 없었던 (무임금)퇴직휴가를 받아가는 고마움까지 감읍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최영 철도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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