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속이 꽉 차기 직전 11월 초, 소비자 이야기를 들으러 전통시장으로 갔다. 먼저 간 곳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이었다. 마산어시장은 취급 품목이 다양해 취재차 구경차 가기 좋다. 또 해안도로 건너 수산물시장에 방문한 이들도 만날 수 있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앞서는 소비자들이 있었다. 한 소비자 장바구니가 홀쭉하기에 장을 보러 가는 줄 알았는데 살 게 없어 집으로 가려 한다고 했다.

살 게 없다는 데에는 물가가 비싸다는 의미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싼 걸 사려 수산물시장에 왔지만 막상 손이 가지 않았단다.

마산어시장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는 그 소비자는 합성동에 사는 80대였다. 얼마나 많은 장을 보고 얼마나 많은 김장을 치러왔겠는가. 그에게 요즘 물가가 체감 상 어떤지 물었다.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먹도록 하는 게 요즘 물가란다. 더 구체적으로 물으니 그는 "나 말고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이소"라며 웃었다.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갑작스레 말을 걸며 쫓아오니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비자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만나는 여성 노년층 일부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이들 노인의 자존감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이들을 보며 느낀 건 나 또한 노년이 되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이가 우리네 인생에 이런저런 결정타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나이 들지 않는 이가 없다. 노력 없이 누구나 얻는 게 나이다. 별일이 없이 살면 누구나 80대가 된다. 그러니 나이 앞에 부끄러워지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무사히 80대가 돼 시장에서 기자를 만난다면 이 말을 꼭 덧붙이겠다. "노년들이여 힘내시오!"라고.

/주성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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