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남쪽바다합창단 창단
일상 나눔이 모여 아름다운 공간 채워가

아침 출근길에 학교 가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제 등판보다 큰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끝이 없다. 학교 앞 길목에는 할아버지·할머니가 깃발을 들고 등교를 돕고 있어 더 따뜻한 풍경이다. 아이들을 보니 오래전 홍익재활원과 야학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가르치던 야학에는 재활원 아이들이 많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도 가끔 보고 싶은 진호, 영민이, 진원이, 진문이.

해마다 11월이 오면 재활원 아이들과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카드를 직접 그려서 보내던 그때 그 시절, 밤늦게까지 아이들은 신나게 캐럴을 부르기도 하고, 따끈한 붕어빵을 호호거리며 나눠 먹기도 했다. 장애가 심해 붕어빵조차 제 입에 넣을 수 없는 아이도 있었지만, 친구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서 제가 그린 양 뿌듯해하던 착한 아이였다. 집에 돌아올 때면 선생님을 보호한다며 따라나와선 "씨유 투마롱롱롱롱~~~" 고래고래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주던 휠체어 부대. 그 아이들과의 추억은 내 삶에 소중한 선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복 많은 내게 올해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더해졌다. 마산의 인문학 공간인 이은문화살롱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남쪽바다합창단을 창단한 것이다. 이은문화살롱이 지향하는 것처럼 지식이 지혜가 되고, 인문학 공부가 일상의 나눔이 되는 삶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전기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진행된 어눌한 창단식이었지만 장애가 있어도 괜찮은 우리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음을 새삼 느낄 수 있어 뭉클했다. 세상과 소통하며 제 몫의 삶을 잘 살아내길 바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조현병을 앓고 있지만, 행복하고 싶어 참여했다는 길수 씨.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이 더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만든다는 그의 말이 서늘했다. 나 역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많은 조현병 환자들을 만나 왔지만, 세상 편견이 무색할 만큼 모두 순박했기에 그의 절망이 더 안타까웠다.

프랑스의 철학자 라캉은 '속지 않는 자 방황한다'고 했던가. 가끔은 제 욕심껏 살아가며 사회의 제도 속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뻔뻔하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증상에 떠밀려 고통받고 방황하는 이들 아픔이 어쩌면 인간적이라 느껴지고 때로는 이들의 고통이 더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현병은 약물치료와 함께 정신사회적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 발병자의 3분의 1은 완전히 회복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또한 3분의 1은 증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므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 고통도 나누면 줄어드는 법, 창동예술촌에 마련된 공간 이은문화살롱에서 이제 그 작은 역할을 나누며 함께 가 보자. 힘들게 이끌고 온 인문학 공간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려면 모두의 자발적인 헌신과 즐거움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도망치지 않고 함께 고락을 나눠준 운영위원님들과 말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운영위원장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즐거운 위트로 편안한 합창단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지휘자님과 반주자님께도 물론. 앞으로 합창단 연습 때 떡국을 준비해 주실 우선향 님과 봉사위원들님의 예쁜 마음도 전해드린다. 토요일 오후 2시 이은문화살롱. 입 큰 개구리들은 모두 오시라! 따끈한 떡국 국물로 배 채우고 신나게 노래해 보자.

/이은혜 이은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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