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일극체제 맞설 현실적 대안은?
주민 여론 수렴 없이 정치 공방 일색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사 직후 영어로 이 단어를 언급해가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파가 몰리는 곳이면 당연히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이 할 일이다.

경남에서 '인파'를 떠올리면 지금은 창원시로 통합된 옛 마산 창동 중심가가 생각난다. 1980년대에만 해도 주말이면 창동 중심가엔 사람들 발길이 가득했고 연말이면 그야말로 밀려다녔다. 그러나 최근 영화 <태안>을 보러 오랜만에 저녁 시간 창동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낮에도 가끔 들렀고 상권이 죽었단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업종에 관계없이 1층 상가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코로나 영향과 경제사정으로 서울 등 수도권 상권도 예전 같진 않다고 하지만 가끔 서울로 가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몰렸나' 생각이 든다. 수도권 초집중을 국가적 현안으로 다루고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한 지 오래지만 성과는 더디기만 하고 정치권 약속은 번번이 선거철 사탕발림에 그치는 모양새다.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설 가장 강력하고 유력한 후보로 출전을 기대했던 '부울경특별연합'마저 2년여 공을 들였지만 내년 본격 업무 시작을 앞두고 무산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정부 하에 민주당 인물이 부울경 3곳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던 초유의 시기에 지방자치법을 개정해가며 도입, 전국적 주목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단체장들도 모두 국민의힘 소속으로 바뀌자 논리도, 제목도, 우선순위도 돌변했다. 특별연합을 거쳐 장기적으로 행정통합으로 갈 게 아니라 '경제동맹'을 유지하면서 경남과 부산 행정통합부터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측은 직전 단체장 시절 성과 지우기로 규정하고, 행정통합 추진 역시 특별연합을 파기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특별연합을 파기하면서, 장기과제로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행정통합에 나서는 것을 두고 "파혼을 선언하면서 조만간 결혼하자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나왔다. 이에 대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박완수 경남지사는 정부 재정 지원이나 행정 권한이 없는 지금의 특별연합으론 오히려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서부경남 소외 심화, 부산으로의 빨대 효과 우려 등도 제기했다. 진정한 메가시티로 가는 길은 행정통합이라고도 했다.

이를 지켜보는 경남 주민들은 무척 혼란스럽다. 전문가 집단이나 행정에서나 사용하던 연합과 동맹, 통합의 차이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다. 특별연합 추진 과정에서도 여론 수렴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주민들 일상생활이나 행정은 물론 정치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광역단체 간 통합을 선언부터 해놓고 천천히 준비위를 구성해 여론 수렴에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경남도와 부산시가 60년 만에 다시 합쳐 '부경특별자치도'(가칭)가 되려면 경남도가 제시한 일정처럼 2025년 주민투표를 거쳐 2026년에는 단일 광역단체장을 선출해야 한다. 특별자치도 안에서 경남과 부산은 지금도 갈등 중인 먹는 물 문제를 비롯해 각종 폐기물 처리 등을 공유하고 나누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광역단체장으론 초선인 박완수 경남지사와 보궐선거 당선으로 초선 임기 1년 남짓을 보낸 재선 박형준 부산시장은 초대 특별자치도 수장을 놓고 당내 경선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두 사람은 행정통합을 이뤄낼까.

/정학구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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