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영화감독 '병수' 이야기
4층 건물 층따라 4막으로 구성
홍상수 특유의 실존주의 고찰
전작 비해 메시지 명확성 짙어

홍상수 감독의 28번째 장편영화 <탑>이 지난 3일 개봉했다. 다작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소식은 언제나 “또?”와 “또!”의 여론으로 나뉜다. 불호 쪽의 여론은 매번 비슷비슷하기만 한 영화를 “굳이 또?”라며 날카로운 눈을 하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팬들은 먼저 들려오는 각종 영화제 소식에 “역시 또!”라며 국내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탑> 속 한 장면. /갈무리

성공한 영화감독 ‘병수’는 인테리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딸 ‘정수’와 함께 인테리어 디자이너 ‘해옥’의 공간을 방문한다. 병수는 해옥이 소유한 아담하고 단순한 구조의 4층짜리 건물에 호감을 느낀다. 4막으로 구성된 영화 <탑>은 1막은 1층, 2막은 2층, 3막은 3층, 4막은 4층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계단씩 상승하는 이야기들은 개별적 사건의 옴니버스인 듯하면서도 짙은 유기성을 띤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 때 공간이 주는 영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홍상수 감독. 그의 탑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영화 <탑> 속 한 장면. /갈무리

1층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는 병수와 정수와 해옥. 병수가 급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자 정수와 해옥은 병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정수는 시종일관 병수에게 적대적이다. 그를 ‘여우’라고 표현하며 대중이 그리고 해옥이 알고 있는 모습은 완전히 가짜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옥은 오히려 대중이 아는 모습이 병수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며 정수에게 일침을 가한다. 계속되는 해옥의 말에 정수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어색하게 웃기만 한다. 병수는 다시 해옥을 찾아간다. 건물 2층에 자리한 ‘선희’의 레스토랑이 마침 비어 있고 셋은 함께 와인을 마신다. 병수의 오랜 팬이라는 선희는 병수의 영화를 민망할 정도로 칭찬하더니 이내 눈물까지 흘린다. 그런 상황이 싫지 않은 듯한 병수는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가까운 사이가 된 선희와 병수는 3층 선희의 공간에서 함께 살게 된다. 호감을 느끼던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된 병수. 하지만 표정은 좋지 않다. 나빠진 건강 때문에 강박적인 채식을 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선희가 친구를 만나러 가고 혼자 남게 되자 몹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병수는 되레 자신은 혼자가 편하다는 잠꼬대 같은 말을 한다. 병수는 마침내 마지막 층에 도달한다. 혼자가 좋다던 병수 곁에 또 다른 여자가 있다. 병수는 건강을 위해 육식을 하고 술과 담배와 신을 찾고 여자를 찾는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며 상승의 방향이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탑>에서의 상승은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것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Tower’가 아닌 ‘Walk up’인 이유와도 맥이 통한다.

영화 <탑> 속 한 장면. /갈무리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이 뒤따른다. 필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반복되는 주제에 중심을 두었다. 1·2막은 타인의 시선이 말하는 병수의 모습이고, 3·4막은 병수가 말하는 병수의 모습이다. 어떤 모습이 진짜 병수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실존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병수의 딸 정수가 병수를 두고 실종자라고 말하는 것 또한 대표적 실존주의 작가 카프카의 소설 ‘실종자’를 떠오르게 한다. 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탑>은 덜 어렵다. 분명히 쉬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불편함을 일으키는 요소들은 줄어들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명확성이 짙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파격적인 영화적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홍상수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공간을 확실하게 취한 대신 시간은 확실하게 버렸다. 환상적 요소가 가미되어 일종의 타임리프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애매모호한 시간의 배치를 각자 나름의 순서로 구성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아쉽게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는 마산 창동예술촌에 위치한 ‘씨네아트 리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조이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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