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본도 지키지 않은 선거사범들
책임·권한 있는 자리 오를 자격 없어

이태원 참사는 전 국민에게 또다시 한동안 몸서리날 큰 슬픔을 주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어쩐지 재발방지 노력과 국민 충격을 보듬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흔히 보아왔던 공세를 하는 쪽과 기를 쓰고 막으려는 모습으로만 보이는 것은 촌부의 비뚤어진 심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위 국민을 대변한다는 대의정치의 직업을 가진 이들이 국민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참사 다음날 술판을 벌인 이도 있었고, 경남의 어떤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국민애도기간에 제주도 단체 여행에 나섰다가 비판 여론에 되돌아온 일도 있었다. 국민 믿음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던 것이다.

며칠 전에는 6.1 지방선거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임박하면서 경남지역의 선출직 공무원을 겨냥한 수사가 속도를 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초자치단체장의 절반이나 재판에 넘겨졌거나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2명, 교육감까지 포함되었다. 이 중 재판에 넘겨졌거나 검찰로 넘어간 현직 단체장은 거창·창녕·의령·산청·하동 등 군수 5명이다. 그리고 창원·거제·함양·남해 등 다른 현직 단체장을 대상으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회의원 2명도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하영제(국민의힘·사천남해하동) 의원 등 4명은 대통령 선거일(올 3월 9일) 30일 전부터는 중앙당사와 도 당사 밖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기고 사천, 남해, 하동 지역사무실 3곳에서 당원집회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도 국회에 있는 의원실 압수수색을 받았다. 서일준 의원은 같은 당 박종우 거제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민주당 후보인 변광용 전 거제시장이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간부들을 경찰에 고발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이달 초 송치됐다. 박종훈 교육감 측근 선거운동원 3명은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선량들 입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선거법은 공정한 선거를 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이들이 실제 재판에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선거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것이 된다. 억울해 할 수도 있겠지만 법을 어겼으면 처벌은 당연하다. 얼마 전에 끝난 전국체전에서 출발규칙을 어겨 뛰어 보지도 못하고 퇴장당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스포츠 경기도 그러할진대 선거법은 더욱 엄정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장은 못해도 수백 명의 공무원을 거느리고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을 운용하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엄청난 세비에다가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 권한과 국가의 살림을 총찰하는 권력을 쥐고 있다. 교육감 또한 교육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리에 오르려는 이들이 한치라도 범법할 마음을 지녔다면 애초에 자신을 돌아보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염치가 없으면 그 나라에 희망은 없다. 선거철만 지나고 나면 엊그제 밤새 비 온 뒤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볼썽사나운 풍경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는 이제 국민 손에 달렸다. 국가와 사회를 좀 더 희망 있게 하려면 국민이 직접 회초리를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왔다는 걸 너무 늦게들 깨닫고 있어 걱정이다.

/이순수 작가·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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