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형식 빌려 가상 인물과의 대담으로 풀어
모든 에피소드는 실화이거나 실화 기초 재구성
장이 끝나는 지점 QR코드 넣어 음악 감상 배려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는 '삼색재즈콘서트' '김해재즈콘서트' '진주재즈콘서트' 등의 사회와 해설을 도맡아 진행하는 김현준 재즈비평가가 우리 음악계의 민낯을 다룬 자전적 현장 재즈비평서 <캐논>을 냈다.

이 책은 비평서이긴 한데도 구성이 독특하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빠끔히 열렸다 닫히는 클럽 문 사이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타건(打鍵).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지만 몇 소절만으로도, 몇 개의 음으로도 정체를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한세영의 피아노 소리는 특징적이다. 냉큼 들어가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쉽게 안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벌써 가? 조금만 더 보자.' '지루해.'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피아니스트였어.' 젊은 남녀가 클럽을 나서며 말한다."(12쪽)

소설 형식이어서 그런지 쉽게 몰입된다. 글에 등장하는 한세영은 1969년생이다. 고교 졸업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피아노를 공부했고 학업을 마친 뒤 2년은 그곳에서 연주생활을 했다. 1996년 귀국하면서 한국 재즈계에 등장했다. 그는 20년간 많은 이들의 큰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활동하다가 일신상의 불행한 일을 겪고 연주를 중단했다. 7년 동안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채 살았다.

비평서에 등장하는 이 한세영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김현준 비평가가 설정한 가상의 피아니스트다. 글을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작가'로 지칭했다. 2장 '수련'에서 호칭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한세영의 질문에 라디오 방송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저는 그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작가) 불렀겠죠. 그런데 작가란 호칭을 사실 저는 가장 좋아합니다"라고 답한다.

"한세영의 삶과 직접 관련된 부분만 빼면, 이 책에서 소재로 사용된 에피소드는 모두 실화이거나 실화를 기초로 재구성한 것이다. 구체적인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들 또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그 모든 일을 겪은 주체가 나라는 점에서 이 책은 다분히 자전적이다. 동시에, 우리 음악계의 민낯을 그대로 옮긴 현장 비평서이기도 하다. 단순히 대담의 형식을 빌린 픽션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과장도 없고, 축소도 없다."

김 작가는 책머리에 미리 이렇게 다짐을 놓았다. 가상의 등장인물 때문에 사실이 허구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리라.

책장을 넘기다 유독 눈에 띄는 글귀를 만났다. "나는 왜 비평을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나의 비평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 데 대한 감성의 화답이다.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학적 신념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이성의 손길이다."(125쪽) 그가 사회를 보는 공연 현장에서 출연 음악인에 대해 그토록 정감 있는 말로 소개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작가와 한세영의 대화를 따라 다시 책장을 넘기다 재즈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어 집중하게 된다. "우리나라 음악계에는 '담론'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이든, 어떤 지향의 것이든 사람들은 말을 잘 꺼내지 않습니다. 누가 이슈를 제기해도 반응하지 않고 속으로 되뇌기만 합니다. 재즈에 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 대화를 이어갈 때 작가의 감정이 흥분의 수준까지 올라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 되는 장면이다.

이 비평서는 독자에게 글만 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각 장이 끝나는 지점에 큐아르(QR)코드를 넣어 쉬엄쉬엄 음악 감상도 하게 배려했다. 한울. 389쪽. 3만 5000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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