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은 뒷전, 높은 분 중심의 추모 행사
이태원 참사 정치 논리로부터 자유롭나

지리산과 인접한 산청군과 함양군은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비극적 역사의 아픔을 공유한 지역이다. 지난 4일 산청군 금서면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서는 제71주년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이 정재원 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들과 이승화 산청군수, 진병영 함양군수 등 관계 기관장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두 지자체 모두 행사 후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이날 주요 참석자를 열거하며 자기 지역 군수와 행정안전부 관계자 이름을 맨 앞자리에 적은 게 눈에 띄었다. 두 지역 모두 유족회장 이름은 맨 뒤였다. "이날 위령제에는 진병영 함양군수와 이승화 산청군수를 비롯해…(중략)… 정재원 유족회장과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예의 두 지역 보도자료에는 이날 행사에서 정재원 유족회장이 전한 인사말 내용도 없었다. 오직 이승화·진병영 두 군수의 '좋은 말씀'뿐이었다. "명예회복을 넘어 유족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 가는 내용이었지만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두 지자체가 보도자료에 첨부한 행사 사진의 '주인공' 역시 두 군수였고 유족은 아니었다. 어떤 사진은 '우리 군수'를 중심에 세우고자 하는 의지가 절절하게 묻어났다.

홍보 담당자들의 선택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지자체 예산이 투입된 군수가 직접 참석하는 행사인데, 더구나 언론들이 비중 있게 보도를 할지, 보도하면 몇 줄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행사도 아닌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사건의 아픔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현장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외에 대다수 국민은 언론을 통해 위령제를 만나게 될 텐데, 그 자리를 유족들은 뒷전이고 유족들의 목소리는 없는 현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무려 158명의 국민이 어이없고 참담한 죽음을 당했다. 예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은데, 역시 유족은 뒷전이고 여야 각 정치세력의 잇속과 이해관계만 난무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며 문제를 축소·은폐하다 뒤늦게 '무한책임' 운운하며 사과를 했을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실과 거리가 먼 음모론적 시각으로 사건을 재단하고 부풀리며 정치 공세에 몰두 중일 것이다.

담당 지역이나 영역이 어떠하든 사회적 공기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그날 참사를 예견하고 경고하지 못한 것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그날 나와 당신은 또 한 명의 희생자나 유족이었을 수 있고, 어쩌면 무신경한 구경꾼이나 무책임한 호사가였을 수도 있다. 진정한 추모는 그날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정직하게 성찰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고동우 자치행정2부 부장 산청·함양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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