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이파리 속에 숨어서 조용하게 자기의 자태를 자랑하는 비범함이 있는 꽃이 있다. 온 세상의 풀과 나무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한다고 분주한데, 홀로 꽃을 피우면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을 피우기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인 점점 내려가는 기온과 일사량 부족이라는 자연조건을 자신만이 가진 숨겨진 재능을 최대한 이용해서 피워낸 작고 아름다운 꽃은 세상 어느 꽃도 부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녹차나무꽃은 자세히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데, 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너무 큰 찻잎이 푸름을 유지한 채 윤기를 가지고 있으니, 조그맣게 피운 꽃은 너무 깜찍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마치 숨은 듯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해맑은 모습으로 자신을 뽐내고 있고, 자신을 바라봐준 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앙증맞은 꽃에도 혹시 향기가 나려나 하고 자신도 모르게 코를 가까이 가져가게 된다.

보통의 열매는 꽃이 지면 바로 열매를 맺는다. 녹차나무도 꽃이 지고 나서 열매를 맺지만, 열매는 꽃이 다시 필 때까지 1년을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매달려 있다. 일 년 전에 피운 꽃에서 열린 열매가 이듬해에 피는 꽃과 서로 만나므로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부른다. 옛날 사람들은 새 꽃이 피면 열매가 떨어지는 차나무를 통해 일 년 동안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고, 그래서 이 나무를 상서로운 나무로 여겼다.

차나무의 잎은 차(茶)로 많이 알려져 있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하는 등의 여러 효과가 있어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기호식품이다. 차의 이러한 효과 때문에 수행자들이 오랜 기간 가까이 두고서 애용하면서, 차와 참선은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히 격식을 갖추게 되고,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다도(茶道)가 생겨났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인 육우는 이런 모든 사항을 정리해서 차에 관한 전문서를 집필했는데, 오늘날까지 차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지침서로 인정받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서 차를 한잔 마셔보자. 생각도 비워보고, 연말이 다가오는 즈음에 올해를 돌아보자. 우리가 잊고 살았던, 아니면 놓치고 살았던 것이 생각날 수도 있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비어 있던 마음의 여백이 더 커지게 될지, 아니면 다른 색으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한동구 ㈜MH에탄올 안전보건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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