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학부모 모임서 출발
마을카페 '이음' 거점으로 활동
저녁 밥상 나눔·친환경 농사 등
스스로 삶 가꾸며 지역문화 형성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어느 순간에는 사는 대로 생각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기와 사는 대로 생각하기, 똑같은 단어를 단지 순서만 바꿨는데 이토록 큰 차이가 있다니. 생각하는 대로 살기 원하는 열망은 늘 사는 대로 생각하기의 현실에 가로막히고, 우리는 열망만으로 가득한 일상을 숙제처럼 산다. 그러기에 이기적 소유를 내려놓고 건강하고 실천적인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만나면 경외심을 느낀다.

양산시 덕계에 자리한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 전우경(48) 사무국장과의 만남은 삶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와의 약속 장소인 마을 카페 '이음'의 문 앞에는 2022년 11월 새 단장 오픈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 공간 조성에 도움을 준 사람 이름이 죽 나열돼 있었다. 이곳이 '평화를 잇는 사람들'의 거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첫 출자금 모집에 3000만 원이 모여 공간을 조성했고 이번 재오픈 때도 3000만 원을 모아서 공사했다.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는데도 이만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룬 힘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바쁘게 약속 장소에 들어선 그를 향해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던 것은 그만큼 그들 삶의 방식에 궁금함이 컸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은 공동체 미덕을 익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평화를 잇는 사람들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은 공동체 미덕을 익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평화를 잇는 사람들

◇대안 학교 = '평화를 잇는 사람들' 조합원 대부분 그곳에 자리한 대안 학교 '꽃피는 학교'의 학부모들이라 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 틀 속으로 고민 없이 밀어 넣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내 아이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과감히 떨친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학교를 구하고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공동체 삶을 실천하는 이들의 삶은 신선했다. 그들은 개인으로 약한 존재인 인간이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때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앎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곳에 모여 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초등 대안 학교에 관심이 있어서 아이들만 학교에 보내는 정도였다. 대안 학교는 미인가를 지향한다. 그들이 원하는 교육은 기존 학교 교육과는 결이 다르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위해 인가받지 않고 운영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정부에서 대안학교 법제화를 시도했다. 정부에서는 대안학교를 법적 테두리에 묶고 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안학교 학부모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교육부 앞에서 장기간 농성을 했다. 이 과정에서 모래알 같았던 이들이 각성하고 하나로 뭉쳤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학부모들도 대안적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모아 그들은 하나·둘 학교 근처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마을 내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이러한 고민이 대안적 문화를 형성하여 지역 사회로 확장됐고, 2017년 1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 협동조합을 형성하고 교육문화 활동의 거점 마을 카페 '이음'을 열었다.
 

전우경 사무국장은 고교 시절 전교조 교사 해직 사태를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 뜨게 됐다. /윤은주 시민기자
전우경 사무국장은 고교 시절 전교조 교사 해직 사태를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 뜨게 됐다. /윤은주 시민기자

◇사회적 협동조합 = 전우경 사무국장은 조합 출발 당시부터 중심축이 되어서 이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그는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산여고와 동의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했는데, 고교 시절 전교조 교사의 해직 사태를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 뜨게 됐다. 자연스럽게 대학 시절에도 인권과 문화 운동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31세에 결혼해 첫 아이가 6세 되던 해, 아이의 학교 교육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나마 바른 생각을 가진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꽃피는 학교'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 아이가 16세가 된 지금까지 10년 동안 자연스럽게 중학교까지 만들어졌다. 지금은 초등 45명, 중학 24명, 총 69명의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4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사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기본적인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지금껏 몸과 마음을 모아 교육활동을 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형성하고 지원 신청할 때도 심사 과정에서 '그래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공동체와 교육의 힘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데 집중했고, 사회적 경제 지원단체로도 선정됐다. 

그들은 이런 뚝심의 원천이 끊임없는 공부에 있다고 믿고 있다. 엄마 학교와 아버지 학교를 열어 전 생애에 걸친 부모의 역할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보살필 공부를 했다. 마을 서원을 운영하며 경전과 인문학 도서를 읽고 마음을 나누며 공동체 미덕을 익혔다. 그런가하면 청년학교를 열어 삶의 길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삶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청년학교를 졸업한 이들 중 몇몇은 공동체에 합류해 교사로 활동하며, 아이들과 부모로만 구성됐던 공동체의 든든한 허리가 됐다.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은 저녁 마을밥상 나누기로 공동체를 더욱더 다져나가고 있다. /윤은주 시민기자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은 저녁 마을밥상 나누기로 공동체를 더욱더 다져나가고 있다. /윤은주 시민기자

◇공동체 = 그들에게는 노동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비건 카페를 운영하고 애코 플라마켓을 열고 텃밭과 논에서 친환경 농사도 짓는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들도 스스로의 밥그릇은 치울 수 있고 옷을 지어 입을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은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연히 환경을 사랑하고 공동체 미덕을 익히게 된다. 

이들의 공동체를 더욱더 공고히 해주는 의례가 바로 저녁 마을밥상 나누기였다. 각자 처소는 다르지만 이들은 중학교 건물에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침 식사 시간이라 그 저녁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1인용 소반에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생명을 여기까지 오게 해 준 비, 해, 흙, 바람과 농부의 정성으로 큰 꽃 한 다발을 감사히 먹고 흙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굶어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앞에 차려진 밥상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오늘 하루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식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제 손으로 음식을 덜어서 남김없이 먹고 설거지했다. 돌봄을 받고 자란 음식을 감사히 먹고 가치에 대해 기도하는 그들의 식사 시간은 소박하고 정갈한 예식처럼 느껴졌다. 

이런 밥상 나누기 외에도 이들의 활동은 다양하고 의미 있었다. '다시 쓸 프로젝트'를 통해 생활재인 샴푸·생리대 등을 만들어 나누어 쓰고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한다.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며 만남과 공동체 영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에 지원되는 금액은 매 끼니 학생 1인당 식대 1000원이 전부이지만 이들은 의미 있는 교육을 위한 스스로의 대가 지급을 당연히 여긴다. 
 

◇꿈꾸다 = 그는 5년 전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했던 당시 꿈꿨던 거의 모든 일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 지원을 위한 심사에서 그는 '꿈꾸다'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 학교 외에 수공예, 목공방, 도서관 등을 열어 마을 생태계를 구축하겠노라 했다. 이런 마을이 만들어지면 세상이 새롭게 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에 더해 마을방송국까지 생겼으니 꿈꾸던 것 이상을 이루어 낸 셈이다. 그들은 이런 든든한 공동체 울타리에서 배우고 싶은 공부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소박하고 따뜻하게 살아간다. 

그는 사무국장 업무 외에도 학교에서 연극과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며 초등·중학교 다니는 아이의 학부모이다. 이런 많은 정체성 가운데 그는 '이모'라는 말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삶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 모두의 아이를 함께 기르는 다정한 이모가 되고 싶었다. 각박한 현실의 삶 속에 아이들 주변에 좋은 어른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곳에선 모두가 이모이고 삼촌이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를 이런 마을이 더 많아지는 데 기여하는 것, 대안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일, 이 마을에서 더불어 잘 사는 일이라 말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참으로 오래된 미래 생활 방식을 보는 듯했다. 가족마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외면하는 시대,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며 모여서 이토록 소박하고 아름답게 설 수 있다니. 어쩌면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앞으로 삶의 전형이 아닐까. 새롭고 신선한 삶의 전형이 펼쳐지는 현장에 전우경, 그가 있다. /윤은주 시민기자(수필가·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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