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우위 통해 만족 느끼는 자
인간 본성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

인터넷에서 경계는 희미해지고
조회수 장사하는 언론이 부추겨

2022년 10월 29일 오후, 그들은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코로나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추억을 쌓기 위해, 누군가는 오랜 수험생활에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올해 첫 성년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쌓느라.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다. 제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무고한 젊은이들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았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참사가 발생하면 사고 현장을 목격했거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대리 외상 증후군(Vicarious Trauma)'을 겪는다. 대리 외상 증후군이란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언론매체를 통해 사고 장면을 보거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심리적 외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대리 외상은 주로 사건·사고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경찰이나 소방관, 치료사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대리 외상을 입을 경우 공포·무기력·분노→불안→불신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사람이 심리적 외상을 호소한 것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사고 당사자가 아님에도 이를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는 것의 기저에는 '공감(Empathy)'이 있다. 공감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적인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로 정의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해가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사회적 지능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다른 동물과 가장 차별화되는 '고등한 인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사고 당사자가 아님에도 이를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는 것의 기저에는 '공감'이 있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건·사고 당사자가 아님에도 이를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는 것의 기저에는 '공감'이 있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 /연합뉴스

극악무도한 범죄 가해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은 '공감 능력의 결여'다.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고,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데 거리낌이 전혀 없다. 통계적으로 인구의 2% 정도가 이러하다고 한다. 이른바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이들이다. 그런데 비극적인 참사가 벌어지면 희생자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김없이 피해자와 유가족을 조롱하고 욕하는 콘텐츠가 자극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 그것들을 필터링 없이 기사화해 조회수 올리기에 급급한 인터넷 언론도 기승을 부린다.

이럴 때면 '2%라는 숫자가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즐기는 건 예외적인 현상인가, 보편적인 현상인가?

◇샤덴프로이데 = 인간에게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공감 능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존재한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뜻한다. 손실·고통을 뜻하는 단어인 '샤덴(Schaden)'과 환희·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Freude)'를 섞은 독일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쌤통'이 가장 가까운 단어다.

지난해 10월 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양성 진단을 받았을 때, 미국의 영어 사전 사이트 메리엄-웹스터(Marriam-Webster)에는 '샤덴프로이데' 검색량이 3만 500%나 늘어 1순위 검색어에 오른 일이 있었다. 안티가 많은 것과 더불어 그가 평소 코로나바이러스를 경시하는 언행을 해왔기에, 사람들이 양성 판정을 접하곤 "그것참 꼬시다"라는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마음, 즉 샤덴프로이데는 일반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지만,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건 악마"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감정은 여러 문화권에서 두루 발견되고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샤덴프로이데를 살펴보면 '자기 보존에 뿌리를 둔 인간의 생존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폴 호케마이어(Paul L. Hokemeyer) 박사는 수렵 채집 사회에서부터 인간이 다른 인간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상과 안전을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즉 타인의 불행을 관찰함으로써 스스로 객관적인 관찰자 신분에 설 수 있고, 비교우위를 통해 기쁨과 충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참사가 일어나면 사고 현장을 목격했거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대리 외상 증후군'을 겪는다. 사진은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운영 중인 재난심리지원카페. /연합뉴스
참사가 일어나면 사고 현장을 목격했거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대리 외상 증후군'을 겪는다. 사진은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운영 중인 재난심리지원카페. /연합뉴스

◇온라인 가학성 = 샤덴프로이데를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라고 치자. 이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건 가학 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생각과 행동'이라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문제는 지금이 21세기 정보화 사회라는 것이다. 샤덴프로이데에 관한 책을 쓴 저술가 티파니 스미스(Tiffany Watt Smith)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온라인 세상은 '샤덴프로이데와 가학 행위'가 하나가 되어 누군가를 향한 흉기로 기능하고 있다. 흉기가 목적하는 바는 대부분 굴욕과 수치심이다. 예를 들어 잘나가는 연예인이 스캔들로 추락했을 때 온라인 세상은 샤덴프로이데를 넘어 그를 조롱하고 짓밟는 가학 행위로 가득하다.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져서 해당 연예인의 존엄을 파괴한다. 특히 그 주인공이 여자 연예인일 경우 그 정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여자 아이돌을 보면, 그가 느꼈을 '굴욕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온라인 공간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질투·분노·열등감을 증폭시키는 도구다. 비루한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많은 이가 익명이 주는 편안한 공간에서 샤덴프로이데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을 향해 가학적 행위를 일삼는다.

이들은 어떤 정신적 경로를 통해 이런 행위에 이르는 것일까? 타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지배감을 느끼고, 자신과 같은 무리로 구성된 내집단 속에서 존재감과 안전감을 확인받는 행위는 보상·동기·쾌락 등에 영향을 미치는 도파민(신경전달물질)에 중독되게 한다. 이 중독은 행동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전전두엽 기능에 이상을 초래해 당사자를 원시적 감정, 즉 일차원적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결국 정서적 균형과 건강한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가치는 이들에게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황색 언론 = "CPR 가능한 여성 분?…대다수 남성, 여성에 CPR '주저주저'". 인터넷 언론에 등장한 10월 30일 자 기사 제목이다. 해당 기사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논란'이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당연히 해당 글을 누가 썼는지, 정확한 전후 사정이 어쨌는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기사가 의도하는 바는 뻔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절반 이상이 젊은 여성임을 고려했을 때, 언제나 높은 조회수를 보장하고, 여과 없이 가학성을 드러내는 집단의 놀이터가 되는 '젠더 관련 이슈'를 끌어와 조회수를 올리고 싶다는 의도이다. 실제 목격자와 생존자들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남녀 할 것 없이 고군분투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비극적인 사건·사고 발생 후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소셜미디어에 참혹했던 광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을 게재한 후 이를 즐기는 이들이 계속해서 세력을 떨치는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황색 언론이 존재한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공격하는 행위로 심리적 만족을 얻는 이들과, 타인의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황색 언론의 이 천박한 공생을 끊어내지 않으면 결국 우리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 많은 이는 기술이 발달하면 테크노피아가 온다고 했다. 그 정(正)에 비례하는 부(負)를 우리는 잊고 있는 게 아닐까? 

/구재영 시민기자(심리학 작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업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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