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거제도를 다녀왔다. 남파랑길이 안내하는 거제 남서쪽 남부면과 동부면을 훑기 위해서다. 이곳에서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들이 여럿 보였다. 수평선을 따라 길게 뻗은 섬 가운데 가장 큰 땅덩이는 한산도라 했다. 부산 강서구 송정공원에서 시작된 일주였는데 어느새 눈 안 가득 한산도가 담겼다. 송정공원과 남·동부면 간 거리는 약 100km. 그간 걸어온 길을 새삼 곱씹다가 여느 지자체보다도 남파랑길 구간이 많은 거제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간중간 코스를 이탈해가며 온몸으로 거제와 만났다.

거제 탑포마을 핑크뮬리. /최석환 기자

◇전국구 사진 명소된 근포동굴 = 시골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여행길 출발지 지명은 저구리 근포마을. 이곳은 희미하게 난 숲길과 바닷길, 그리고 띄엄띄엄 놓인 어촌을 잇는 동네다. 마을 풍경은 여느 가을 모습과 비슷한 듯 다르다. 시골 농로의 경우에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많아 밭이 굽이진 듯한 곡선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이 많은데 여기는 밭과 밭 사이 굽고 휜 흙길이 여럿 드러나 보인다. 네모반듯하지 않은 느낌이 그만의 운치를 안겨준다.

남파랑길 24코스가 가리키는 첫 출발지는 저구항이지만, 바다를 끼고 도는 거제 남쪽 끝 포구 근처 근포마을에 발을 내디딘 건 작은 어촌에 유명 땅굴이 하나 있어서다. 이름은 근포동굴. 바다를 낀 동굴에서의 조망이 남다른 곳이다.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동굴 길이는 30m에 이른다. 1941년 일제강점기에 포진지로 사용하고자 일제가 만들었다. 반세기 넘게 방치돼오던 굴이었다. 그랬던 근포동굴이 최근 몇 년 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구 명물이 됐다. 인스타그램에 ‘근포동굴’이라 해시태그된 사례를 찾아보면 게시물은 2만 2000개가 넘는다. 최근까지도 관련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거제  쌍포교회. /최석환 기자
거제 쌍포교회. /최석환 기자

◇남부면 또 다른 사진 명소들 = 남부면에는 사진 명소가 여럿이다. 근포동굴과 함께 쌍포교회도 명소로 꼽힌다. 이곳은 빨간 벽돌에다 주황색 지붕을 얹어 지어졌다. 삼각형 모양을 한 교회 건물이 밝은 건물 색깔과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교회 뒤편에는 숲이 있고, 앞편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와 숲이 만나는 자리에 교회가 있어 눈에 확 들어온다. 색깔 때문인지 자꾸만 눈길을 주게 만든다. 근포동굴과 견주면 SNS에 올라오는 게시물 수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지만, 방문객들이 교회를 배경으로 찍어 올린 사진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제 탑포마을 핑크뮬리. 밭 운영이 중단돼 예전처럼 빼곡하게 심긴 핑크뮬리는 볼 수 없다. /최석환 기자

쌍포교회와 불과 1㎞ 거리에 있는 탑포마을은 한때 분홍색 또는 자주색 빛을 내는 핑크뮬리가 심기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서 거제 남부면 탑포마을을 검색하면 핑크뮬리 사진이 가장 먼저 나온다. 창원지역 한 사업가가 이 마을에 핑크뮬리를 심으면서 한동안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로 줄을 이었다.

핑크뮬리는 미국 중서부 지역이 원산지인 높이 30~90㎝ 외떡잎식물로 전 세계적으로 즐겨 심는 조경용 식물을 말하는데, 지금도 마을 입구 위쪽에는 핑크뮬리가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밭 운영이 중단돼 예전처럼 인터넷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볼 수 없다.

마을 주민 설명을 들어보면 핑크뮬리밭을 운영하던 한 사업가는 주민들로부터 땅 수천 평을 임차해 밭을 일궈왔다. 그러다 2년 전부터 주민들에게 줘야 할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밭 운영이 멈춰 섰다. 반발한 주민들은 핑크뮬리밭을 갈아엎고 개인 농사를 지을 생각도 했었으나, 결국 비용 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전화에도 이 사업가와 연락이 닿지 않아 반론을 듣진 못했지만, 임차료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당분간 핑크뮬리 명소로 불린 탑포마을에서는 이전 같은 조망은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제식물원 정글돔 전경. /최석환 기자
거제식물원 정글돔 전경. /최석환 기자
거제식물원 정글돔 내부. /최석환 기자
거제식물원 정글돔 내부. /최석환 기자

◇눈길 붙잡는 거제자연예술랜드와 거제식물원 = 남부면에서 동부면으로 올라가면 거제자연예술랜드가 나온다. 국내 최초로 돌기둥에 식물을 접합한 작품인 석부작을 만든 이성보(75) 씨가 운영하는 전시관이다. 거제 능포동이 고향이라는 이 씨는 언젠가 고향 땅에 관련 전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안고 살다 30년 전 동부면에 거제자연예술랜드를 열었다.

국외에서 사들인 돌들로 문양석(문양이 새겨진 돌), 형상석(물체를 형상화해 만든 돌) 등을 제작해 전시 중이다. 이곳에는 있는 작품은 1만 2000~1만 3000점에 이른다. 돌기둥 1000여 개 말고도 돌을 이어 붙여 사람을 형상화한 작품도 3000여 개가 있다. 이 씨는 이 작품들을 만들고자 50억~60억 원을 썼다고 한다.

2020년 1월 개관한 거제식물원은 지역 식물 생태계와 열대·난대·온대 등 다양한 환경에 서식하는 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거제정글돔(열대온실), 야외생태 정원, 수생정원, 석부작 정원 등으로 구성된 식물원은 국내 최대 규모(4468㎡) 온실을 갖추고 있다.

거제정글돔은 국내 온실 중 천장이 제일 높다. 높이는 30m에 이른다. 기둥 하나 세우지 않고 유리 조각으로 돔 안을 꾸몄다. 여기에는 유리 7500장이 쓰였다. 온실에는 300여 종 식물 1만여 그루가 산다. 야자가 가장 많다. 종류만 수십 종이다. 곤봉야자·공작야자·대왕야자·성탄야자 등이 그것이다. 보리수·바오바브나무 등 거대한 나무도 식물원에 있다.

※길라잡이
남파랑길 24코스는 10.6㎞로 3시간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거제 여느 구간이 다 그렇지만 이곳 역시 숲길과 어촌마을을 동시에 만나 볼 수 있게 구간이 짜여있다. 난도가 높진 않다. 무리 없이 걷기 좋다. 크게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이왕 이 구간을 걷기로 했다면 코스를 이탈해 근포동굴을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남파랑길 25코스는 14.6㎞ 거리다. 소요 시간은 4시간 정도가 걸린다. 여행길 안내 앱 ‘두루누비’에 들어가면 가을 핑크뮬리 명소라며 탑포마을을 소개하고 있으나 본문에서 소개한 것처럼 지금은 명소로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핑크뮬리밭 운영이 중단된 상태여서 핑크빛으로 빼곡한 풍광을 만나보기 어렵다. 이 코스 또한 볼거리가 많지 않다. 근처에 있는 거제자연예술랜드와 거제식물원이 유일한 볼거리다.

/최석환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