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농심을 대변하는 나락 포대가 경남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쌓인다. 정부의 쌀 45만t 시장격리곡 매입 추진은 떨어진 쌀값을 추스를 근본 대책이 아니라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농업인의 날(11월 11일)을 하루 앞둔 10일 오전 의령군청 앞 인도에 나락 포대가 쌓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령군농민회 소속 농민이 거둬들인 40㎏짜리 나락 포대로, 모두 87포대였다. 무게는 3480㎏으로 적잖이 나가지만, 값은 지난 5일 통계청 산지쌀값조사 기준(20㎏ 4만 5781원)으로 800만 원이 채 안 된다.

이날 만난 농민 허해구(50·의령군 부림면) 씨는 “쇠값이 올라 호미, 낫값도 다 뛰었는데 쌀값만 반대로 떨어진다”며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허 씨 말처럼 땅값, 인건비, 비룟값, 기름값, 심지어 호미·낫 등 기본 농기구값마저 다 올랐지만 쌀값은 올 들어 45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다. 밥 한 공기(100g) 쌀값은 228원가량이다.

올해로 농사 25년 차인 그는 “지난해는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올해만큼 힘든 때가 없다”며 “25년 농사지으면서 빚만 2억 원 쌓였다”고 말했다. 이어 “10억 원 쥐고 농사지으려거든 이자나 받고 사서 고생 말라고 등 떠미는 판국”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농심이 뿔 나자 지난달 정부는 작년산 쌀 10만t과 올해산 쌀 35만t 등 45만t 시장격리 매입 절차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허 씨나 김주일 의령군농민회장은 입을 모아 “잠깐 대책일 뿐 근본 대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의령군농민회가 10일 의령군청 앞에서 쌀값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나락 적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의령군농민회가 10일 의령군청 앞에서 쌀값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나락 적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난 9월 자식처럼 기른 나락을 갈아엎었던 농민은 지난 7일부터는 나락을 적재하고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7일 진주·함안, 9일 하동·합천, 이날 의령까지 지역 농협 앞이나 공동선별장 앞, 군청 앞에 나락 포대가 쌓였다. 내달 16일 거대한 투쟁인 전국농민대회 예고인 셈이다.

성난 농심은 이날 의령군농민회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의령군농민회는 “국내 전체 농가 51.8%가 벼농사를 짓고, 농업소득 33.9%인 쌀은 농민 생존권과 직결된다”며 “쌀값이 껌 값, 개 사룟값, 심지어 자판기 커피값에 견줘도 낮은 까닭은 정부 정책 실패 탓”이라고 지적했다.

농민회는 △추곡수매제(농민에게서 직접 추곡을 수매하는 제도) 폐지 △쌀 목표가격제(변동직불금제) 폐지 △자동시장격리 없는 양곡관리법 개정 △대책 없는 쌀 개방 등을 실패한 정책으로 꼽았다.

이어 쌀값 하락 원인을 국민 쌀 소비량 감소나 과잉 생산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령군농민회는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매년 수입하는 외국 쌀 40만 8700t은 국내 소비량 10% 이상을 차지한다”며 “쌀 수입만 중단해도 떨어진 쌀값을 추스를 큰 실마리가 풀린다”고 말했다. TRQ는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저율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날 의령군농민회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쌀 수입 전면 중단 등 쌀값을 추스를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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