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육청 공공 언어 계획 수립
조례 개정에 국어전문가 채용
공문서 점검·직원교육 등 챙겨

문서 작성 안내서 제작·배포
부서별 보도 자료 점차 개선
"바른 공공 언어 확산에 노력"

경남교육청이 보도 자료 등 공문서를 작성하면서 쉬운 우리말을 쓰는 데 앞장서는 모범 기관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기본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공공 기관은 국어기본법에 따라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

도교육청은 문화예술과장 등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한 도내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외부와 소통을 담당하는 홍보담당관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했다.
또 국어전문가를 채용해 공문서를 감수하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승욱(왼쪽) 경남교육청 국어책임관과 김민지 국어전문가가 최근 발간한 '경상남도교육청 공공언어 바로 쓰기' 책자를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신승욱(왼쪽) 경남교육청 국어책임관과 김민지 국어전문가가 최근 발간한 '경상남도교육청 공공언어 바로 쓰기' 책자를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보도 자료 2번 걸러 = 올해 2월 도교육청 국어전문가로 채용된 김민지 주무관은 이달 기준 보도 자료와 공고문 등 500여 건을 감수했다.

김 주무관은 △공공 언어 개선 지침·자료 개발 △공공 언어 연수·교육 △공공 언어 상시 점검 등을 맡고 있다.

도교육청 보도 자료는 1차적으로 해당 부서에서 작성하고, 홍보담당관실에서 내용이나 구성 등을 수정한다. 이때 담당 사무관이 먼저 외국어·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일본어 투 등을 고치고, 김 주무관이 한 번 더 살펴본다. 외국어 등을 고칠 때는 국립국어원의 다듬은 말, 문화체육관광부 보도 자료 평가 대상 용어, 자체적으로 수집한 공공 언어 목록 등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교육청의 보도 자료에서는 MOU(업무협약), 팬데믹(대유행),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등 외국어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말로 고치지 않고 ‘로드맵’ 등을 썼던 것과 다르다.

김 주무관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들은 잘 알기 때문에 뜻을 풀이하지 않고 외국어나 외래어 등으로 전문 용어를 썼었다”며 “쉽게 설명하고자 각주를 달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해당 부서에서 보도 자료 등에 먼저 각주를 달고 있다. 또 특정 단어를 어떻게 바꾸면 좋겠냐고 먼저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시·군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경남도민일보>가 도내 공공 기관 20곳의 보도 자료 200건을 살펴본 결과 60.5%(121건)에서 외국어,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번역 투 등이 발견됐다.

고성군·남해군·함양군 등은 정보공개청구 과정에서 국어책임관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업무 실적을 살펴본 결과 보도 자료를 감수하는 지자체는 김해시·거제시 등에 불과했다. 보도 자료는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인데도 외국어·외래어 등을 감수하는 공공 기관이 드문 것이다.

도교육청은 최근 <경상남도교육청 공공언어 바로 쓰기> 책자를 만들어 1200명 직원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책은 띄어쓰기부터 쓰지 않아야 할 권위적·차별적 표현을 비롯해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 외국어·외래어 등을 담고 있다. 기안문, 보도 자료, 공고문 등을 어떻게 우리말로 쉽게 써야 하는지도 담겨 있다.

특히 외국어·외래어 등을 우리말로 고쳐 쓸 때 참고하거나 도움받을 수 있는 각종 누리집을 담았다. 국립국어원, 부산대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 온라인가나다 등이다.

책자는 언론사, 경남도의회, 경상국립대 홍보실 등에서 요청해 전달됐다.

◇“언어는 사회의 약속” = 다만, 도교육청 국어책임관도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우선 일선 교육지원청의 우리말 사용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다. 도교육청은 산하 기관 34곳에 24명 국어책임관과 109명 국어담당자를 지정했다. 그러나 산하 기관에서는 아직 국어책임관과 담당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얄궂은 외래어를 섞어서 제목을 만들거나 이상한 행사명을 만드는데, 국어담당자가 있어도 걸러지지 않는다”며 “교사가 제출하는 기획서는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실제 한 교육지원청은 계속해서 보도 자료에 ‘○○식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시간이나 행사 등을 ‘가졌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영어(have) 번역 투이다.

이에 신승욱 도교육청 국어책임관은 아직 ‘마중물’ 단계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경상남도교육청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를 전면 개정하고 올해 국어전문가를 채용하면서, 현재는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단계라는 것이다.

도교육청은 산하 기관과 교육지원청 등에 ‘찾아가는 공공언어 직장 교육’ 등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교육은 신청을 받아 진행했는데, 올해만 10차례 교육을 했고, 4차례 더 예정돼 있다. 만족도는 95%가 넘는다.

한 참가자는 “평소 무심코 쓰는 언어에 잘못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교육이었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내년에는 전체 국어책임관과 국어담당자와 함께 공동 연수를 추진할 계획이다.

도교육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내년 본청, 교육청, 직속 기관 등에 ‘우리글 길라잡이’ 동아리를 운영할 계획이다. 또 내년 하반기에 문서, 게시문, 공고 등을 작성하고 다듬는 방법을 안내하는 <경상남도교육청 공문서 바로 쓰기>(가칭)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다.

쉽고 바른 공공 언어를 모범적으로 사용하는 교직원에 표창을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신승욱 국어책임관은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미 널리 쓰이는 단어를 억지로 우리말로 바꾸는 게 소통 측면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도 있다”며 “세계화와 정보기술(IT) 산업의 급격한 성장 속에서 수많은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가 모여 큰 울림이 되듯이 교육청 구성원과 함께 쉽고 바른 공공 언어 사용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2021~2025년 국어 바르게 쓰기 운영 계획’을 마련해 중·장기적으로 공공 언어 개선을 진행한다.

/김희곤 기자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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