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책임 현장 치안 담당 일선 경찰로 한정
청장, 장관 경질 선 긋고 "사태 수습"만 강조
대통령실장 "행정 공백 야기 문책은 후진적"
야권 "꼬리자르기" 여권서도 "자진 사퇴" 압박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을 현장 치안을 담당한 일선 경찰 쪽으로 한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꼬리 자르기'로 규정하며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즉각 파면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아져만 가고 있다.

경찰에 참사 책임을 한정하려는 기조는 지난 7일 오후 공개된 윤 대통령의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발언으로 구체화됐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지키고자 위험과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현장에 나가 있었잖느냐. 112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 발생한 거냐" 등 현장 경찰 대응 미비를 나무라는 데 발언 시간을 할애했다. 이와 함께 "책임이라고 하는 건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했다. 책임론이 경찰보다 윗선으로 확산하는 데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태세는 8일 윤 경찰청장과 이 장관 모두 "대통령실에 사의 표명을 하지 않았고, 관련 요구도 받은 바 없다. 상황 수습과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며 사퇴 여론을 일축하면서 분명해졌다.

이를 두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당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윤 청창을 향해 호통치듯 다그쳤지만 정작 이는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말"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한 놈만 팬다'는 것도 아니고 경찰에만 책임을 묻는 게 맞느냐"며 "참사 책임을 경찰 선에서 꼬리 자르려는 것에 더해 경찰 손보기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총체적 무능과 부실로 국민을 지키지 못했으면 석고대죄부터 하는 게 상식적 도리인데 이렇게 회피하는 후안무치한 정권을 본 적이 없다"며 "총리 경질과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즉각 파면 요구는 정치 공세가 아니라 희생자를 향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공세를 펼쳤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진상 규명과 사태 수습이 먼저라는 태도다. 김대기 대통령실 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책임자 경질에 따른 '행정 공백'을 우려했다. 그는 책임자 경질 관련 야당 의원 질의에 "지금 장관 바꾸고 경찰청장 바꾸고 서울경찰청장 바꾸면 그에 따른 후보자 임명, 청문회 등으로 두 달을 허비해 행정 공백이 또 생긴다"며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사태 수습)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특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꾸라고 하는 것은 후진적"이라며 "현장 책임자가 판단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이 장관이나 한 총리가 어떻게 그 상황을 알겠느냐"고 엄호했다.

이 같은 대통령실과 여당 내 기류는 차이가 커 보인다. 당장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권 주자들은 행안부 장관 선에서만큼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데 무게를 싣는다.

전날 김행 비대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실에 그런 것(이 장관 경질)을 포함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전달했다"며 당에서는 이 장관을 문책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드러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정치책임은 사법책임과는 달리 행위책임이 아니어서 진상규명과 상관없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의 경질을 촉구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갓 임명된 주무부처 장관인 해양수산부 장관은 왜 바로 해임되었나. 정치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경찰을 담당하는 업무가 행안부 장관에게 이관된 만큼 이상민 장관도 정치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4선 윤상현 의원도 8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장관은 정치적·결과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나라면 자진해서 사퇴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안철수 의원도 누리소통망(SNS)에 "이 장관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사태 수습 후 늦지 않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만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다"고 했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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