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학생·시민·종교인도
저마다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손배소와 가압류로 짓누르려는
악랄한 권력에 대응해
주권 지키려는 절박한 절규다
쉽게 꺼지지 않을 불꽃이다

지난 10월 30일 오전 2시 32분. '아빠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랄까 봐 남기지만 난 이태원 근처에 안 갔고…'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월호의 충격과 분노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또다시 딸의 또래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다. 이태원 참사가 아닌 세월호에 이은 국가안전 참사에 분노를 삼키지 못해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조선하청지회 '감사 투어'를 떠났다.  

◇곳곳의 외침 = 11월 2~4일까지 '51일 파업 연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산·울산·포항·경주·대구·소성리·양산을 다녀왔다.

548일째, 파업 43일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해고하고, 교섭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부산 서면시장번영회를 다녀왔다. 각종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2명의 노동자를 기나긴 세월 동안 거리로 내몰고 있는 부산서면시장번영회 조합원, 고맙다는 인사말에 우리가 더 큰 도움을 받았다고 끝까지 투쟁해서 고맙다는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간부들.

부산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조합원들의 투쟁 모습. /강인석
부산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조합원들의 투쟁 모습. /강인석

퇴근 시간에 맞춰 오후 5시,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울산지역의 장기 투쟁 사업장과 노동법 개정 투쟁 승리를 위한 울산노동자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대로 살 수 없다'고 피켓을 든 6개 사업장 조합원들. 거제도에 연대 갔다며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조합활동에 더 도움 된다는 포항의 민주노총 경북본부와 금속노조 포항지부, 민주노총 경주지부와 금속지부 간부들.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라며 70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대학 청소 미화 및 보안 조합원들.

새벽부터 '사드 뽑고 평화 심자'라는 원불교 교무님·신도님들, 서울과 경북에서 연대하러 달려오신 평화 지킴이들. "이제는 노동자가 경제 투쟁에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와 금속노조 간부들. 그리고 20년 세월 동안 대구 성서공단에서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노동조합을 일구어나가는 간부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 미화 및 보안 조합원들은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인석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 미화 및 보안 조합원들은 '우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강인석

노란봉투법 제정을 돕자며 노랑 목도리를 짜고 있는 양산 청아람아파트 부녀회원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노동 이야기를 듣고 함께 토론했던 양산 효암고 학생들.

짧은 여정이었지만 많은 분을 만났다. 

연대에 감사 인사를 하려고 갔지만,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었고, 앞으로 조선하청노동조합이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오히려 배우고 감동하였다.

◇손배소와 가압류 = 51일 파업은 7월 22일 끝났지만 석 달이 지나는 지금까지 그 울림은 오히려 더 크게 번지고 있다. 

조선하청노동자가 쏘아 올린 '이대로 살 수 없다'라는 절규는 노동자·농민·대학생을 넘어 전 국민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만큼 노동자 민중이 더 고통을 참고 살 수 없다는 집단적 결단인 듯하다.

특히 노동 삼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약칭)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다. 

51일 파업이 끝난 한 달 뒤인 8월 26일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는 조선하청지회 간부 5명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470억 원은 평생은커녕 하청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는 1000년이 지나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다. 조선 시대 3족을 멸하는 처벌이 있었지만 한 세대가 30년이니 최소한 30세대가 흘러야 900년인데 이것을 갚으라고 한다.

'노동현장 손배사업장 대응모임’은 지난달 2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 손배가압류 실태조사가 현실을 왜곡했다"고 규탄했다. /강인석
'노동현장 손배사업장 대응모임’은 지난달 2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 손배가압류 실태조사가 현실을 왜곡했다"고 규탄했다. /강인석

이는 단순하게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의 목적이 아니라 자손만대 노동조합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하청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월 20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약 14년간 손배소송은 151건(73개소), 2752억 7000만 원 청구, 그중 49건, 350억 1000만 원이 인용되었다. 가압류는 2009년~2022년 8월 총 30건(7개소), 신청액 245억 9000만 원, 그중 인용된 사건은 21건이었다. 그리고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을 상대로 제기된 사건이 142건이었다. 

불법 파업을 이유로 조합비, 노조 간부와 조합원의 임금, 퇴직금, 개인재산에 위와 같은 천문학적 액수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가 행해지고 있다.

한편 2022년 10월 18일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법안 관련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노동자와 사용자 범위를 그동안 축적된 대법원 판례를 법률에도 반영해 명시하고, 정리해고나 권리분쟁 등 노동쟁의 대상을 ILO(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위원회 등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여, 대부분의 파업이 쉽게 불법화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노조법 3조 개정안은 파업권이 손해배상의 위협 아래서 무력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민법이 아니라, 헌법과 노동법 관점에서 손해배상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부터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3조 개정에 관한 청원'을 받고 있다. 지금 즈음 5만 명이 청원서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 관심과 참여가 증폭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22년 조선하청노동조합의 51일 파업은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괴물에 맞서야 한다 = 그러나 아직 현실은 참으로 가혹하다. 

신종 노동 탄압이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가압류는 2003년 1월 9일 손배가압류에 저항하고자 분신했던 고 배달호(두산중공업) 열사 이후 2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노동 탄압의 도구가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가 죽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며 못 죽어서 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피해 노동자 노동자 증언대회' 모습. /강인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최로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피해 노동자 노동자 증언대회' 모습. /강인석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동자의 실낱같은 희망조차 압류하지만, 더 나아가서 천부적인 노동 삼권을 부정하고 헌법을 짓밟는 것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이 괴물은 노동 참사를 일으켰다.

그 괴물은 "소유권을 침해하게 되면 공산주의가 되는 거다, 공산주의가 소유권을 박탈해서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는 거로 가면 안 된다"라며 노란봉투법을 맹비난하는 자,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라고 나불거리는 자, "불법과 탈법으로 회사와 국민,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끼쳐도 처벌과 배상을 못 하게 하겠다는 법"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민주와 진보의 탈을 쓰고 겉으로는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리저리 원청(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쥐고 있는자)의 눈치만 보면서 하청 권력과 부화뇌동하는 자들이다.

2022년 조선하청노동자들의 '이대로 살 수 없다'라는 처절한 절규는 대한민국의 절규다. 차별과 폭압, 착취와 소외, 전쟁과 폭력, 절망과 포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거대한 촛불이 출범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밀려오고 있다. 심상치 않다.

2016~2017년의 촛불은 더불어 민주당에 큰 선물을 줬지만 2022~2023년으로 이어지는 촛불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 이대로 살고 싶은, 이대로 살게 한 괴물들에게 더 노동자 민중의 주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강인석 시민기자(조선소 도장노동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