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대 박물관·지속가능발전센터 학술회의서 제안
경상도 출신 사진신부 하와이 이주 뒤 연대활동 조명

경남에도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이민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경남을 포함한 경상도 출신 여성들이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결혼 이주해 어떤 정치·경제적 연대 활동을 했는지도 소개됐다.

창원대 박물관과 사회과학연구소 지속가능발전센터가 지난 4일 오후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와 초국적 민족, 젠더 공동체 활동'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창원대 박물관과 지속가능발전센터는 하와이 한인 이민 1세대 묘지 조사로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민자 이야기를 복원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특별전시회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가 창원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어떻게 기억할까 = '하와이 소재 한인 이민 및 독립운동 자료 조사연구'(2019년)를 했던 이진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기조 강연에서 "이민자의 삶이 지역과 연결되는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 예를 소개했다. "이선일(1865~1928, 부인·아들 3명과 함께 1905년 하와이 이민) 소장품을 보면 '창신기념가'가 있는데, '경상남도 창원 마산포 교회 안에 여학교를 설립하고 기념, 여학생 김화진이 지은 창가 올셰다'라고 기록돼 있다. 호주 선교사가 설립한 창신학교, 개교 기념가의 작사·작곡자는 근대 국어를 정립하는 데 역할을 한 안확(1886~1946) 등 여러 상황으로 연결된다. 1978년 생존 사진신부(총 102명) 출신지는 경상도 부산, 마산, 함안, 김해, 동내, 남해, 울산, 진주, 대구, 청도, 웅촌, 덕산으로 경상도 출신이 77명이었다."

이 교수는 "의식주·상점·한인 타운·음식점·세탁소·신문사·서점·김치공장·교통·통신·우편·교류 등 이민자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면서 "일본 야마구치 하와이 이민 자료관은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내 5개 박물관과 결연했고,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다. 문화센터처럼 해놓았고, '당신 덕분에 내가 있다'는 문구가 있어 정체성이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창원 또는 경남 한인 문화센터를 지역 박물관처럼 만들면 어떨까 싶다. 하와이 사진신부를 포함해 일본과 중국 등에 이민한 역사도 담고, 예를 들면 창원시는 중국 길림성 서란시와 결연하고 있는데, 각국 도시와 교류도 가능할 것"이라며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한인 이민자들이 마산자유무역지역과 창원국가산단에 이바지한 점, 그들의 기억을 지금 사람들도 인식하면 현재 문화와도 연결되는 것 아닌가 싶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 실현, 관광 측면에서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대 박물관과 사회과학연구소 지속가능발전센터가 지난 4일 오후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와 초국적 민족, 젠더 공동체 활동'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동욱 기자
창원대 박물관과 사회과학연구소 지속가능발전센터가 지난 4일 오후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흩어진 사람들)와 초국적 민족, 젠더 공동체 활동'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동욱 기자

◇경상도 출신 여성들의 연대 = 노선희 가톨릭대 박사는 '하와이 한인여성의 공동체 - 영남부인실업동맹회에 관한 논의'를 발표했다. 1928년 9월 28일 호놀룰루에서 영남 출신 사진신부인 김보배, 박금우, 곽명숙, 이희경, 박정숙, 이양순이 결성한 단체가 '영남부인회(嶺南婦人會)'인데, 하와이 내 다른 단체들과 마찰을 피하려고 '영남부인실업동맹회'로 이름을 바꿨다. 회원이 많았을 때는 150명에 달했다고 한다.

결성 당시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던 의령 출신 이극로(1893~1978)가 하와이에 체류하며 국어 강연을 했는데, 사진신부 가운데 많은 경상도 출신 여성이 그를 환영했으나 이승만(1875~1965)은 "경상도 놈"이라고 멸시하면서 국어 강연에 쓸 회관 사용 요청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한인신부들은 하숙집을 운영하거나 재산을 축적해 호텔을 사들여 운영하기도 했고, 여관업이 사양산업이 되자 농지를 빌리거나 사들여 화훼업도 했다. 이 같은 경제활동은 영남부인회 안에서 이뤄진 비공식 경제활동이자 서민금융 수준이었던 계모임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한인신부 집단은 독립운동 지원 기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정치활동도 했는데, 영남부인회 지원은 하와이 한인단체 중 월등했다.

노 박사는 "영남부인회는 하와이 한인사회 가부장적 권력 구조와 엘리트 중심주의를 배척하고 사진신부 간 연대를 목적으로 형성됐다"면서 "지역주의 한계에도 20세기 전반기 미주 한인여성사에서 유의미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짚었다.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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