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컨테이너에 유골 임시 보관
진실화해위 진주 보도연맹 추가 규명
경찰이 학살한 7명 대다수 청년
아버지 잃은 유족 "늦었지만 다행"
명예회복과 별도로 배·보상 과정 남아
"진주에 공공 납골시설 조성해야"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들의 유해가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일대에 마련된 임시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들의 유해가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일대에 마련된 임시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때 진주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 집단 학살 사실을 확인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1일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회의에서 ‘경남 진주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1)’의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2기 진실화해위 들어 추가 신청을 받은 진주 사건 진실규명은 처음이다. 1기 진실화해위는 국민보도연맹 등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8206건을 접수해, 이 중 6742건의 진실을 규명했다.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부가 좌익 활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가입시켜 통제·관리하고자 1949년에 만든 조직이다.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북한군에 협조할 적으로 간주해 붙잡아 들여 재판 절차도 없이 학살했다.

1950년 경찰은 진주지역 민간인을 예비검속해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화령골·닭족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여항산)에서 집단학살했다. 진주지역 희생자는 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진실화해위는 이번에 진실 규명한 희생자 7명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20~30대 남성으로 한국전쟁 발발 후 군인과 경찰에 붙잡혀 진주경찰서 관할 지서와 유치장, 진주형무소 등에 구금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산경찰서와 육군 정보군 소속 진주지구CIC(방첩대), 진주지구헌병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좌익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 가장의 희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친인척 역시 연좌제로 취업과 사회활동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추모사업 지원, 유해 발굴·안치 등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진실규명 결정으로 72년 만에 아버지의 명예회복 소식을 들은 백자야(72) 씨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연히 자식도 나 혼자이고 그 힘든 세월을 어머니와 견뎌야 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옳은 결정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번 진실규명이 배·보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소송을 해야 하는 데 지난한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힘이 빠진다. 하루빨리 관련 법을 개정해서 진실규명 결정이 배·보상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희생된 민간인 유골이 2002년 태풍 때 호우로 드러났다. 2004년 발굴 당시 모습. /경남도민일보DB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희생된 민간인 유골이 2002년 태풍 때 호우로 드러났다. 2004년 발굴 당시 모습. /경남도민일보DB

이번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진실규명 결정으로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컨테이너에 있는 희생자 유해를 제대로 안치할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용산고개 컨테이너에는 2004년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163구를 포함해 총 301구가 있다. 경남에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유해 저장 공간은 이곳이 유일하다. 희생자 유골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남도는 2024년 대전시 동구에 준공 예정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안치·추모공간 ‘산내평화공원’에 안치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경남도 보훈 담당자는 “현재로선 어디로 모시겠다고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며 “유족, 행정안전부와 논의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진주지역에서 희생된 이들인 만큼 추모공간 및 공공납골 시설을 진주에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조 한국전쟁전후진주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장은 “대전 산내평화공원에 전국 단위 추모공간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경남에서 희생된 분들을 화장까지 해서 타지역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유족들도 다들 고령이라 하루빨리 납골시설을 조성해 희생자들을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신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