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살인사건 용의자-변호사
심리전 통해 진실 밝혀지는데
반전 거듭하며 긴장감 극대화
원작과 다른 변주, 완성도 높여

11월에 들어섰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데 코끝엔 겨울 냄새가 닿아있다. 극장으로 향하는 길엔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고, 마음은 이미 올해의 책장을 덮을 듯하다. 소설책에서 마지막 두 페이지만을 남겨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이미 결말의 큰 줄기는 다 읽은 것 같고, 중요한 내용이 더 나오지도 않을 것 같고, 서둘러 훑기만 하면 또 한 권의 과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 반전은 더 없으리라 넘겨 짚으며 때로는 마지막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한 줄 평을 고민하기도 한다.

극장에 들어서니 지금의 이 기분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듯 스크린은 하얀 눈발로 가득하다. 눈 덮인 산속 별장으로 향한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는 그곳에서 사건을 수임할 의뢰인이자 용의자 '유민호'와 만난다.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진술해야 한다는 '양신애'와 숨기고픈 진실이 있는 '유민호'는 각자의 이해득실을 위한 심리전을 시작한다. 떠오르는 진실들은 반전 앞에 쉽사리 허구가 되고, 더는 반전이 없으리라 생각한 지점부터는 더한 반전이 입을 막게 하는 서스펜스가 펼쳐진다. 두 사람이 내놓는 적당한 진실과 약간의 거짓말에 놀아나다 보면 10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엔딩 크레딧이 눈앞을 채운다.

영화 <자백> 속 한 장면. /갈무리
영화 <자백> 속 한 장면. /갈무리

지난주부터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자백>은 호텔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가 된 '유민호'와 사건을 수임하려는 '양신애'를 중심으로 두 개의 사건, 두 개의 시신 뒤에 감춰진 하나의 진실을 밝혀 나간다. 밀실이나 다름없는 고립된 별장에서 서스펜스를 풀어가는 방식이라 <폰 부스>나 <더 테러 라이브>를 연상하는 관객들도 있는 듯하다. 제한된 공간이 주는 특유의 압박감이 잘 빚은 서사와 만나면 몰입은 증폭된다. 액션신 없이도 극대화되는 긴장감을 좋아한다면 <자백> 역시 탁월한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비슷한 영화들을 떠올리기에 앞서, <자백>은 꽤 알려진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짚고 싶다. 탄탄한 서사로 호평받았던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이탈리아와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리메이크 했는데, 리메이크 영화가 원작의 작품성을 따라가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도 <자백>은 원작과는 다른 변주를 만들어내며 고유의 완성도를 빚어냈다. 이미 원작을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게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재고하기를 권하고 싶다. 또 반대로, <자백>을 먼저 본 관객이라면 OTT 플랫폼에서 <인비저블 게스트>도 이어서 보기를 권한다. 원작은 원작만이 가지는 오리지널리티의 힘이 있다. 원작의 아우라를 느껴보면서도, 연출과 각색에서 차이가 나는 지점을 비교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준다.

영화 <자백> 속 한 장면. /갈무리

커지는 일교차와 줄어드는 일조량으로 바이오리듬의 조종간을 쉽사리 놓치기 쉬운 계절이다. 예기치 않은 일까지 닥치면 마음은 더 크게 휩쓸려 요동치기를 반복하다 침잠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지막 두 페이지를 남겨둔 채 책장을 덮고 싶은 기분이 들겠지만, 한 해의 마지막 한 줄에 붙은 마침표까지 눈을 또렷이 뜨고 마주해야만 새로운 해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는 말로 <자백>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고 싶다.

/전이섬 작가(마산영화구락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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